워렌 비티가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뜻을 내비쳤다.

민주당원인 그는 현 민주당 대선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진영에 불만을 품고
직접 대선경쟁에 뛰어들 것임을 시사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최근 전했다.

"금권정치로 인해 흐려질 대로 흐려진 정치풍토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

미국은 이미 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배출한 터여서 그가
가세할 경우 대선레이스가 한층 재미있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워렌 비티는 미국 영화계의 팔방미인.

배우 감독 제작자 등으로 영화계 전반에 영향을 미쳐왔다.

24세때 엘리아 카잔 감독의 "초원의 빛"으로 데뷔했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샴푸" "해븐 캔 웨이트"등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했다.

81년에는 "레즈"로 "시민 케인"의 오손 웰스가 세웠던 아카데미 4개부문
동시후보에 오르는 대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영화 "불워스"는 워렌 비티가 돈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정치계의 타락상을
비꼰 블랙 코미디다.

정치계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을 매수해 이득을 챙기려는 경제계,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계, 정치인의 달콤한 거짓말에 넋을 놓는 일반대중들을 향해서
도 강펀치를 날린다.

"있는 놈은 더 있고 없는 놈은 없어지네. 방송도 썩었고 정치도 썩었어.
대기업 총수들과 더러운 뒷거래. 모두 하나를 주고 둘을 달래..."

영화는 상원의원 불워스의 입을 통해 "진실"을 쏟아낸다.

대선경쟁중인 불워스 의원은 권력 돈 명예 등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

혼탁한 정치판, 껍데기뿐인 가족관계, 어찌할 수 없는 사회속에 황폐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이 허무해져 끝내 죽음을 선택한다.

그는 로비스트와의 뒷거래로 딸에게 돌아갈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선거운동중 자신을 살해할 청부업자를 고용한다.

더이상 잃을 게 없는 그는 마음에 담아둔 말들을 속시원히 쏟아낸다.

서태지 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랩을 하며 점잖을
떠는 후원회의 높은 양반들을 조롱한다.

그런데 모든 일이 생각과는 반대방향으로 진행된다.

오히려 인기가 치솟고 유세중 만난 젊은 여인과의 사랑에도 빠진다.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살인청부를 취소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거운 정치얘기를 힙합문화의 정수인 랩으로 통쾌하게 풀어냈다.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과 아이스큐브, 퍼블릭에너미, RZA 등 뉴욕
언더그라운드 클럽 래퍼들의 리듬이 어울려 랩음악 영화같은 느낌을 준다.

워렌 비티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모두 이 랩속에 담겨 있다.

한 개인의 다소 과장된 정치적 의견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부의 "진실"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란 점에서 되새겨볼 점이 많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