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상으로만 보면 경기는 회복세가 역력하다.

주가 금리 환율등 금융부문은 물론 생산 출하등 각종 산업활동지표들도
온통 파란불이다.

3월중 산업생산은 18.4%나 늘었다.

95년 반도체 호황시절과 맞먹는 수준이다.

공장가동률도 74.6%로 늘어났다.

수치만으로 보면 산업현장에 활기가 가득하다.

여기에 도소매 판매나 내수용 소비재 출하같은 소비관련 지표들도 가파른
회복세를 기록중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속단을 할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산업생산증가의 절반정도를 반도체 자동차 통신장비 컴퓨터등 특정 산업이
이끌고 있다.

여기에 이러한 산업지표들은 최악의 상황이었던 98년과 비교된 수치라는
한계도 있다.

올해 산업생산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지난해 급속한 위축에 대한
기술적인 반등이 가세한 덕택이란 얘기다.

투자부문도 마찬가지다.

설비투자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기계류수입액과 국내기계수주는 3월중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8.3%와
15.8% 증가했다.

그러나 이 수치도 외환위기 직후 "투자 빙하기"와 비교한 것으로 아직 외환
위기 이전수준을 크게 밑도는 실정이다.

게다가 건설투자의 경우 3월중 국내건설수주가 지난해 동기대비 51.1%나
감소세를 보였다.

초저금리와 금융활황세로 기업의 경영환경은 개선될 여지가 많아졌지만
부채비율 2백%를 맞춰야 하는데다 과잉설비란 부담을 안고 있는 기업들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29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410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최근 기업금융동향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금리하락세
로 인한 금융부담 감소전망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감으로 설비
및 기술개발 투자에 소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기업들은 조달자금의 대부분을 운전자금(34.5%)과 부채상환자금(34.1%)
으로 사용할 계획인 반면, 설비확대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15.3%에 불과했다.

특히 5대그룹은 신규조달자금을 부채상환에 사용할 계획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45.5%에 달해 별도의 대책이 없을 경우 자금시장의 여건개선이 실물
경기 회복으로 곧바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됐다.

요즘 회복세가 초저금리->주식과 부동산등 자산가격 상승->소비심리확산->
산업생산.투자 활기->경기회복의 선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란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특히 이러한 경기지표의 빠른 회복세가 2.4분기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국내여건만 봐도 그렇다.

고실업사태 노사불안 구조조정등으로 지속적인 경기상승을 이어가기엔
곳곳에 지뢰가 잔뜩 깔려 있다는 형국이다.

대외여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속돼온 3저현상이 최근 3고로 전환됐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활황세가 하반기엔 성장이 둔화될
가능성도 높다.

향후 경기 흐름을 V자로 보지 않고 W자형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많은 것도
이같은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김준경 KDI 연구위원은 "구조개혁을 통한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가 따르지
않을 경우 초저금리등 부양정책에 의존하는 경기회복은 조만간 한계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조급한 경기회복을 위한 추가적 경기부양은 자제하고 최근 금융호황세
를 강력한 구조개혁의 기회로 활용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경기에 속도조절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주식과 부동산등 자산이 상반기중 지나치게 부풀어 오를 경우 실물경제가
본격적인 탄력을 받아야할 하반기엔 오히려 수축세로 반전해 실물경기 회복에
장애물이 될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책의 무게중심을 경기부양보다는 구조조정으로 옮겨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제조업 가동률이 70%대로 아직 과거 불황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정부가 추진해온 초저금리 정책이 흔들려선 안된다"
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은 구조조정등으로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금융에 이은 실물경기의 회복세를 어떻게 투자에 연결시키느냐가 관건"이라
고 덧붙였다.

정순원 현대경제연구원 부사장도 "특정산업의 생산 온기를 전산업 분야로
확산시켜야 한다"며 "금융 활황세에서 나오는 자금의 물꼬를 기업투자쪽으로
터주기 위해선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어줘야 한다"고 처방했다.

그는 "특히 환율 금리 주가등 금융시장을 현 수준에서 안정시키는게 가장
중요한 정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신후식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높이지 않도록 세심
한 정책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에 이어 부동산마저 가열기미를 보일 경우 투기 분위기를 조장해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장세가 지속될 경우 인플레 압력을 초래해 다시 긴축으로 가지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수도 있다는게 그의 지적이다.

정부는 "줄을 타는 기분"으로 정책조정의 미세조정(fine tune)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 임혁 기자 limhyuck@ 유병연 기자 yoob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