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관치 < 포스코 경영연구소장 >

정부는 지난 3일 한국전기통신공사를 포함한 11개 공기업의 민영화 계획을
확정함으로써, 다음달부터 매각에 들어가 2001년까지 해당 공기업들의
소유권을 민간부문에 이양하게 된다.

이번 조치가 획기적인 것은 1차 민영화 대상으로 선정된 11개 공기업이
전체 공기업 1백8개의 매출액과 예산의 75%를, 종업원의 68%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소유권을 이전함으로써 공기업의 자율적 경영을
보장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실천한 것이다.

우리가 금번의 조치를 환영하는 것은 정부가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이
자율적 경영권을 가진 새로운 기업으로 출발하도록 시의적절하고 경제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결정을 내린 것 때문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효율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함은
너무나 당연한 책임이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번의 민영화 조치가 국가차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공동
정부가 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정책의지를 천명한 점에 있다.

정부가 공기업 매각과정에서 우리사주와 국민주 방식의 도입, 동일인 주식
소유한도설정 등 대중자본주의실현을 위해 취한 조치들은 국가발전과 경제적
정의구현에 새로운 기원을 만들게 될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배운 교훈의 하나는 형식적인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는 국민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도,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물질적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경제적 민주주의가 동시에 실현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념은 이제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되었고, 우리나라
헌법에도 인간다운 생활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주식의 광범위한 분산에 의한 대중자본주의의 실현은 그 자체가 곧 개인
또는 소수인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견제하는 선결요건일뿐만 아니라 경제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최선의 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금번의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주식의 광범위한
분산은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적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한 사회
공동체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식의 광범위한 분산과 1인당 소유한도의 제한은 소위 주인없는
기업을 누가 책임지고 효율적으로 경영할 것인가하는 민영화기업의 경영에
대한 권한과 책임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 풍토에서 주인없는 기업이 성공한 예가 있는가.

기아그룹의 예를 보더라도 주인없는 기업이 결국은 실패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논란은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민영화
기업의 경영권을 특정 기업인에게 부여하는 특혜 조치가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주인을 만들어주기 위한 이러한 편의주의는 경제력 집중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능률적인 책임 경영을 위해서도 현명한 방안이 아니다.

1인 소유하에서도 기업은 물론 재벌그룹들도 도산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무능한 소유주가 불합리한 결정을 내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아그룹의 실패 역시 전문경영진에 대한 제도적인 감시와 견제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업의 효율적인 책임경영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1인
소유제도가 아니라 전문경영진과 그들의 경영활동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확보이다.

민영화 과정에서 광범위한 주식분산이 이뤄지면 다수의 소액주주가 발생하게
되고 이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외이사중심의 이사회와 별도의 감사
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

이러한 이사회는 전문경영진에게 기업경영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맡기되
경영성과에 따라 보상 또는 책임을 추궁한다.

이사회와 경영진의 경영활동을 객관적으로 감사하는 주주총회에서 선발된
별도의 감사위원회는 경영이 주주이익을 위해 이뤄지고 있는지를 감독한다.

이러한 제도적장치에 의해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면서도 전문경영진에
의한 효율적 책임경영을 구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없는 민영화 기업의 무책임하고 비효율적인 경영을
우려하여 경제적 민주주의를 희생하는 1인 소유체제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 정치적 이해 득실을 초월하여 공기업 민영화를 과감히 추진하는
공동정권의 의지를 치하해 마지 않는 바이며 금번 조치가 대중자본주의에
기초한 경제적 민주주의를 우리사회내에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