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위기는 좀처럼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오히려 확산되는 양상이다.

외환위기의 영향권 밖에 있던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등도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등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는 있지만 아직 시원치
않다는 게 국제 경제계의 시각이다.

지난 75년부터 87년까지 13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이끌었던
폴 볼커 전 의장은 "이같은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결국 금융시스템의 폐쇄성
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금융시스템의 전폭적인 개방화와 국제화
만이 그 치유책"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의 아시아지역이 80년대 미국 텍사스주가 겪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하고 텍사스주의 개혁과정이 아시아위기국들에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리=박수진 국제부기자.parks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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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선진8개국(G8) 정상들은 영국 버밍엄에 모여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선진국들이 지원을 계속하고
일본도 이 지역 경제 정상화를 위해 강력한 내수부양책을 쓰도록 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들이 회의를 마치는 순간까지 간과한 것이 있다.

경제위기가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 견실한 금융시스템과 이를 감시할 제도적 장치등을 잘 갖춘
나라들 금융위기를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현재 아시아 국가들에게 과감한 경제개혁을 강요하고 있는 미국 자신도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역사적으로 이미 다양한 금융위기를 겪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예방 장치들이 비교적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 측면에서 아시아국들은 과거 미국이 위기를 맞았을 때 어떻게 대응
했는지를 연구하는 것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1980년대 텍사스주가 겪었던 금융위기와 그 해법이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당시 텍사스주의 경제규모는 현재의 한국과 비슷했다.

경제는 성장가도를 달렸고 강력하고 튼튼한 금융시스템이 뒷받침돼 있었다.

금융기관들은 수익과 매출면에서 다른 지역은행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견실했다.

독립된 경제단위로서 미국이라는 울타리가 제공하는 안정된 통화체계와
저금리라는 특혜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금융시스템은 텍사스인들의 독특한 기질 덕분에 점차 "배타적"
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른 지역 은행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한창일 때
텍사스인들은 외부 세력과의 연계를 꺼렸다.

다른 나라 기업은 물론 같은 미국내 다른 은행과의 합병까지도 극력 회피
했다.

한마디로 폐쇄적인 금융시스템을 고집한 것이다.

이러한 폐쇄적인 금융시스템은 내부적으로 비리와 부패, 부실의 실마리를
잉태하기 마련이다.

물론 텍사스주에 금융산업의 결함을 지적하고 보완할 감시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능력있는 6개의 회계법인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고 증권감독위원회는
매년 1만 페이지이상의 텍사스 금융증권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적 장치가 텍사스를 부패와 부실로부터 구하지는 못했다.

1980년대 말이 되자 텍사스주에 있는 금융업체들은 싫든 좋든 다른 지역
업체들과 손을 잡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하게 됐다.

경쟁력을 상실해 인수합병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텍사스는 뒤늦게 문호를 개방했다.

그 결과 90년대에 들어서는 텍사스주에 있는 대부분의 주요 은행이 미국내
의 거대은행들에게 인수합병됐다.

텍사스인들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겠지만 이를 통해 텍사스 경제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텍사스주의 이같은 사례는 아시아국가들의 상황과 비슷한 면이 많다.

금융시스템의 폐쇄성이 불러온 부실화와 내부비리, 부패 등은 결과적으로
시스템 전체의 경쟁력 상실을 가져 왔다.

다른 점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던 많은 나라들이 텍사스식 금융해법을 곧잘
도입하고 있는 것은 텍사스 방식이 금융위기를 막는데 보편성을 얻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중남미 경제대국인 아르헨티나는 경제위기상황에서 통화제도와 금융산업의
과감한 개방을 추진했다.

금융산업을 개방한 결과 1개의 시중은행을 빼고는 전 금융권의 경영권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다.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에서 단골 메뉴였던 "금융권 개방문제"를
IMF관리 이후 완전히 해결했다.

문호를 개방한 후 주요 5개은행중 4개은행의 지분이 상당부분 해외투자자들
에게 개방됐다.

외환위기전에는 자국 금융권을 과잉보호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태국은
이제 외국인들의 지분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유럽국가들에서는 이미 외국인이 금융업체를 경영
한다는게 더이상 뉴스거리가 안되고 있다.

물론 이같은 개방화 현상은 비 금융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각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합작법인 설립이든 주식
병합 방식이든 간에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개방화와 국제화는 이제 기업생존과 경쟁력의 요체가 됐다.

즉 한 국가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를 원한다면 금융시장을 개방
하지 않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같은 결론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이 그리 간단치는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많은 기회비용을 포기해야 하고 고통도 따른다.

그러나 문제점을 직시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다.

아시아국들은 금융시장을 보다 과감하게 대내외에 개방할 필요가 있다.

< LA타임즈 신디케이트 본사 독점전재 >

[ 폴 볼커 전 FRB의장 약력 ]

* 27년생(71세)
*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졸업
* 뉴욕연방은행, 채이스맨해튼은행 근무
* 미국 재무부 차관(69~74년)
* 뉴욕연방은행 총재(75년)
*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79년)
* 제임스D웰펜손사 회장(86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