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 < 한국 외국어대 교수/재정학 choik01@chollian.net >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은 해당부처 장관이 딱 부러지게 아랫사람들을 통솔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새정부 출범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두고
얼마전 청와대 고위당국자가 해당부처 장관들에 대한 책임추궁까지를 시사
하며 내린 진단이다.

필자로서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이 어느정도 심각한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무사안일 할수밖에 없는 까닭은 분명히 알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공무원의 무사안일에 대해 장관의 책임은 극히 미미하다.

장관에게 부처를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으면서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다.

장관은 부처의 관리자이다.

관리자는 사람을 관리하는 인사권과 돈을 관리하는 재정권을 가지고
있어야만 통솔이 가능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장관은 자신이 관장하는 부처내에서 인사권
과 재정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장관이 관리자로서 해당부처내의 공무원들을 확실히 통솔할 수
없으며 현재의 제도와 운영을 그대로 두고는 공무원의 무사안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어느 조직이든 관리자는 누구를 채용할 것인가,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
누구를 승진시킬 것인가, 누구에게 얼마의 보수를 줄 것인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부하직원들을 통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장관은 위의 네가지중 그 어느것에 대해서도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해당부처 공무원들로서는 장관의 말을 겁낼 까닭이 없다.

공무원의 채용 징계 파면과 관련된 권한은 제도적으로 해당부처 장관에게
있지 않고 행정자치부(종전의 총무처)가 관장한다.

누구를 승진시킬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을 포함하여 장관이 유능한 인재를
발탁할 방법이 실질적으로 없다.

능력이 탁월해 자신의 맡은 업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생산성 증대에 크게
기여해도 장관이 그 기여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공무원 보수지급규정으로는 꿈도 꿀 수 없다.

밖으로 보기에 장관의 권한이 대단한 것 같으나 현실의 실질적인 제도와
운영을 놓고는 관리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장관의 권한은 극히 제한적이다.

장관이 인사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원칙에 따라 공평무사하게 권한을 행사하는 한 해당직원의
생살여탈권은 장관에게 보장해 주고 그 권한행사의 결과에 대해서는 확실
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문제해결의 적절하고도 올바른 방법이다.

능력있고 원칙을 존중하는 장관이 임명되고 그가 확실한 인사권을 공평무사
하게 확실히 행사할 때 부처 공무원들은 무사안일할 수가 없다.

공무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장관이 정치적 성향이 강하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며 인사권이 원칙에 따라 행사되지 않을 때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일할
의욕을 잃게 된다.

장관이 정치성이 강할 때 그 장관은 자기 부서의 일보다 밖의 일을 우선적
으로 챙기며 부내의 일을 챙기더라도 원칙보다 편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중심을 잡고 있는 소수의 공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아부적
근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몇몇 부서의 인사에서 관찰되듯 성실히 묵묵히 일한 공무원들보다
대내외적으로 로비 잘하고 아부 잘하는 사람들이 주요 자리에 발탁될 때
공무원사회 전체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다.

장관이 비리에 연루되지 않고 청렴하게 사는 모범을 보이면 부하 공무원들
은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능력이 뒷받침되면서 깨끗한 원칙론자를 장관에 임명하는 것이
공직사회의 기강을 확립하는 첫 걸음이다.

제대로 된 장관의 임명을 전제로 장관에게 부처내의 임면 보수 승진과
관련하여 실질적으로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장관으로 하여금 부처내의 공무원들을 잘 통솔하여 좋은 정책을 합리적으로
수렴하게 하고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장관이 관리자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 각종 제도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