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유럽 11개국이 통화통합을 향해 실질적인 첫발을 내디딘 4일 국제금융시장
의 반응은 이렇게 나타났다.

이날 뉴욕, 싱가포르 등 주요 외환시장에서 마르크를 비롯한 유럽통화는
거의 변화가 없는 안정세를 보였다.

특히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의 주요 증시는 2-4%씩 오르는 큰폭의
상승세로 "유러화 출범"을 환영했다.

이같은 시장의 반응은 유럽정상회담을 지켜봤던 서방 언론이나 경제
분석가들의 예상과는 사뭇 어긋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분석가들은 정상회담 폐막후 유럽통화가 상당한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었다.

프랑스의 막무가내식 고집으로 초대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임기가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첫출발부터 이같은 "편법"이 동원된 것은 유러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고 따라서 유럽통화의 약세를 초래할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전망이었다.

가령 뉴욕타임스의 경우 "중앙은행 총재직을 둘러싼 갈등으로 유러화의
가치가 손상될 것"이라며 "일부 경제학자들은 프랑스가 의도적으로 달러화에
대한 유러화 가치를 낮게 형성하기 위해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스위스의 르탕지는 "프랑스가 경제적 이익보다 정치적 이해를 앞세우는
고집을 부렸다"고 비난했고 네덜란드의 텔레그라프지도 유럽 공동의 이익이
특정국가에 의해 희생됐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프랑스 언론조차 유럽의 단결력 취약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등
비판적 논조를 취했다.

그러나 막상 4일의 금융시장은 "무관심하다"(AP통신)고 할만큼 ECB총재를
둘러싼 알력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이는 ECB총재를 누가 맡느냐보다는 "유럽이 단일통화 출범에 합의했다"는
사실이 시장에서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졌음을 뜻한다.

이와관련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4일 기자회견을 통해 "ECB총재 절충안이
품위를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화통합의 역사적 본질이
손상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ABN 암로은행의 토니 노필드는 "초대 총재의 임기에 대한 잡음이 부정적
요인이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으나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잘못"
이라며 유러화의 장래에 대해 신뢰를 표시했다.

이처럼 유러화에 대한 지지발언이 잇따르고 실제 금융시장의 반응도 평온
하게 나타나자 경제분석가들의 의견도 "ECB초대총재 지명을 둘러싼 불협화음
이 유로의 신뢰성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유러화의 장래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다.

독일 금융계에서는 여전히 프랑스측의 태도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에서는 분데스방크가 "프랑스에 대한 보복"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 경우 프랑스를 포함한 다른 유럽국가들도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고
이는 경기후퇴를 불러올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는다는 분석이
그래도 많다.

< 임혁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