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28일 주장한 "선금융, 후기업 구조조정론"은 "대기업의 구조조정
속도가 느리다"는 정부의 평가에 대한 반론으로 해석된다.

구조조정의 우선순위를 변경할 것을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현재의 구도로는 구조조정 속도를 높일 방법이 없다"며
"이 상태에서 정부가 재촉할 경우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당초의 목표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가 먼저 금융기관부터 구조조정하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이렇다.

우선 경쟁력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춰야할 기업 구조조정이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은행의 재촉에 못이겨 "돈 될만한 것"을 팔아서 은행의 부실채권
을 줄여주는 구조라는 것이다.

기업들은 은행들이 제 살기에 급급해 전망있는 기업에 돈을 대는 것을
포기했다고 보고 있다.

은행들이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고금리, 대출회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정상적인 사업을 할 수 없다는게
재계의 호소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이다.

기업을 지원할수 있는 대형금융기관이 나타나야 기업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이 우량기업을 더욱 키워 주고 부실기업에 출자전환 등의 지원조치를
취해 주지 않는한 기업의 구조조정은 공염불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회의에서 모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공공부문이나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는 없다"며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안되면 흑자기업이 도산하고 결국 은행까지 무너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이 이날 회의에서 퇴출제도를 정비하고 정당한 정리해고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들은 진입 장벽 못지 않게 퇴출장벽도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업들은 상호지보 등 연결고리를 끊지 못해 우량계열사를 팔아 부실기업의
목숨을 연장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속도는 더뎌질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핵심우량사업을 다 팔고도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

정리해고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부장관이 "30~40%의 대량해고는 해고회피 노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정부가 고용조정을 사실상 가로막고 있다는게 재계의
불만이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올 하반기나 내년에 가면 기업의 구조조정성과가
가시화될 것"이라며 "그러나 금융기관이 과감히 구조조정한다면 구조조정의
성과는 더욱 빨리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권영설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