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리로 이사를 하여/연강과 함께 이웃을 한다/연강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연강리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그 사람들 친한 친구도 아니고
또한 친척도 아닌데/그 사람들 인정 있고 활기 있어/봄 동산의 따스한
볕과 같네"

중국 당나라때의 문인이었던 가도가 이웃의 정을 강조한 "연강음"이라는
시다.

한국 속담에도 "세닢 주고 집 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는 말이 있다.

이웃이 더욱 값진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웃 사촌"이라는 속담이 생겨 나게 되었다.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이웃에 사는 사람이 먼 곳에 떨어진 친척보다
나음을 일컫는 말이다.

물이 멀리 있으면 가까운 곳의 불을 끄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고 이웃이 언제나 모두 정겹게 지내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이웃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도 이웃이 괴롭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그 아픔을
함께 나눠갖게 되는 것이 상례다.

옛 사람들이 이웃을 돕는 것을 하늘의 도라 한 것도 이웃의 이같은
속성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의 이웃은 혈연 내지는 지역을 매개로 오랜 세월에 걸쳐 끈끈하게
맺어진 공동체속의 일원들이었기에 따사로운 정이 넘쳤다.

그러나 산업사회 도래 이후 인구의 급증과 이동, 도시화의 급진전 등으로
사회가 이익공동체적 성격을 띠면서 이웃의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가까이 있으면서 멀리 있는 이웃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서울의 이웃끼리 낙엽피해를 놓고 송사를 벌인 사건에서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웃의 편린을 발견하게 된다.

옆집 은행나무에서 날아온 낙엽이 옥상 배수구를 막는 바람에 벽에 물이
스며들었다고 피해배상을 해달라는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이웃의 관계가 이렇게 변해버린 마당이지만 여전히 인간은 친구없인
살아갈수 있어도 이웃없인 살아갈수 없는 존재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속성은 변치 않았다는 말이다.

예전처럼 따스한 정이 흘러넘치지 않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도와주는 이웃이 있을 때 그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