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도체업계가 겪고 있는 위기는 외부 차입에 의한 무모한
과잉투자가 불러온 자업자득이라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은
우리경제의 지나친 반도체의존 체질과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지난 1일자 이코노미스트는 위기에 처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산업을
비교 분석한 기사에서 대만 기업들은 현명한 대처로 어려움을 착실히
극복해 나가고 있는 반면, 한국기업들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 메이커들은 자기자본으로 공장을 지은데다 공장규모도 소규모여서
시장상황과 금융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가 쉬운 반면 한국업체들은
그 정반대여서 과잉투자의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라는 것이 분석의 골자이다.

이같은 분석에 대해 국내 반도체 메이커들은 최근의 16메가D램 가격의
급락세는 일시적 현상일 뿐, 내년 하반기에는 64메가D램 생산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16메가D램의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 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며
위기설을 일축하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과거 우리의 반도체산업은 총수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톡톡히
효자노릇을 해왔으며 이는 호경기때 충분한 물량을 공급할수 있는
대규모 설비확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반도체시장의 침체가 본격적인
반도체 저성장시대의 예고편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세계 반도체통계기구(WSTS)는 D램시장이 내년부터 살아나긴 하겠지만
99년의 시장규모(3백86억달러)가 지난 95년수준(4백8억달러)보다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정부와 업계도 최근의 반도체시장 상황을 좀더 심각하게
받아들여 장기적인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부차원에서는 과거와 같은 반도체호황을 기대하기 보다는 차제에
우리경제의 반도체의존도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줄로 안다.

부침이 심한 반도체경기의 생리상 반도체 단일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고 산업구조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반도체업체들도 무리한 차입에 의한 대규모 투자를 지양하고 자기자본에
의한 실속있는 비메모리반도체 투자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반도체 경기가 이미 침체에 빠져있던
지난해만도 반도체 3사가 생산시설확대에 대부분 차입금으로 조달한
80억달러를 쏟아 부었다는 것은 분명히 무모했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막대한 차입금은 지금과 같이 반도체가격이 폭락하고 미 달러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업체에 금융비용을 가중시킬 것은 뻔한
이치이다.

최근 메모리분야가 위기를 맞으면서 국내 업체들도 주문형반도체 등
비메모리 투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으나 다행한
일이다.

정부도 업계의 이같은 투자전략 전환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면에서의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