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침체에 이어 20일 환율마저 달러당 9백24원까지 치솟자 "총체적
금융위기"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외환딜러들은 그동안 외환시장이 달러당 9백15원대를 고수하며 국내 금융
시장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돼온 터라 충격이 훨씬 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뿐 아니라 국내 금융기관 기업체들의 달러화 사재기를
본격적으로 촉발시키는 신호탄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지적
이다.

홍콩 싱가포르의 NDF시장(역외 선물환 시장)에서 6개월만기 선물환 가격
으론 처음으로 1천선을 넘어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외환당국은 달러화 강세로 인한 자연스런 움직임이라며 환율
안정책은 없다는 입장이다.

<>환율 동향=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원.달러 환율은 9백14원90전대를 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됐다.

"99.9%의 가능성을 가지고 방어하겠다"(한국은행 이응백과장)며 외환당국이
자신감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후 4시 넘어서며 시장참가자들은 한은의 자신감을 배신감으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매도(9백19원50전)와 매수(9백15원10전) 주문 수준이 9백15원대를 넘어선
것을 신호로 거칠것 없이 9백24원까지 오른채 장을 마감했다.

<>폭등 배경=외환당국의 안정의지가 시장의 힘보다 약했기 때문이다.

증시에서 이탈한 외국자금이 강력한 달러화 수요로 바뀌는 상황에서
<>넉넉치 않은 외환보유고 <>동남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지속하락 등으로
상승압력은 거셀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달러화까지 강세로 돌아서면서 안정의지는 무릎을
꿇고 만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재경원에 따르면 이날 1달러당 대만의 뉴타이완 달러화는 29.86에서
30.21로, 일본 엔화는 1백20.63에서 1백21.39로 각각 하락했다.

<>재경원과 한은의 시각차=한국은행 이강남이사는 이날 오후 긴급간담회를
갖고 "일시적인 수급불균형으로 급등세가 나타났다"며 "보유외화를
풀어서라도 안정선을 지키겠다"는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시장이 이같은 대책에 얼마나 신뢰감을 표시할 지는 미지수이다.

그동안 시장에서 묵시적인 동의를 얻었던 지지선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경원은 한은측의 환율안정의지와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재경원 관계자는 "20일의 환율을 지난해 연말과 비교할 때 1달러당 원화는
7.8%가 절하됐지만 대만 뉴타이완달러는 9%가 절하됐다"며 결코 급등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책신뢰도 추락=국책은행의 한 딜러는 "한 외국계은행이 이날 오전중
9백15원대 붕괴를 단언하면서 기업체들을 상대로 달러화 장사를 했다"며
환율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표시했다.

한은 관계자도 이날 오전 "루머유포 혐의로 외국계 은행 한곳에 대한
징계를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장 마감을 앞두고 루머가 현실화되자 "그게 아닌걸로
판단됐다(상승압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는 얘기)"고 밝혔다.

이날 시장상황을 지켜본 딜러들은 한은이 외국계은행보다 한수 뒤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환율전망=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넘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증시와 환시의 악순환 연결고리가 드디어 작동됐다는 분석에서다.

"외국인 주식매도->환전으로 인한 달러화수요 증가->환율상승->외국인
주식투자메리트 감소->주식추가매도"로 이어지며 증시와 환시를 동시에
뒤흔들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한 외환딜러는 "그동안의 상승압력을 감안할 때 9백30원까지는 손쉽게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외환보유고 등을 감안할 때 외환위기 문턱을 이미
넘어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감을 표명했다.

< 박기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