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노동계의 파업사태에 대해 강경대응을 유보하는 등 그동안의 자세를
바꾸는 것으로 알려지자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정치 논리에 밀려 노동법이 재개정되는 최악의 사태까지 상정하는
등 우려의 소리가 일고 있다.

그같은 사태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시행령에 정리해고등의 요건을 엄격히
해 노동법 개정의 효과를 사라지게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12일 "여권 일각에서 노동계에 유화제스처를 하고 있는 것은
파업의 확산을 막으려는 원론적인 정치 행위"라고 말했다.

종교계 사회단체 학계 등에 까지 반발이 이어지는 등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만큼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수습책이라는 설명이다.

개정 노동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만큼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신한국당의 "노동법 재개정 용의"는 3월부터 시행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고치겠다는 것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재계 전반적인 분위기는 노동계의 파업에 대응하는 여권의 달라진
태도에 몹씨 실망하는 표정이다.

재계의 한 원로는 "칼을 뽑았으면."으로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H그룹 계열의 L사장은 정부의 강경대응 유보는 노동법개정반대투쟁을
각 사업장의 임.단협에 연결시키려는 노동계의 전형적인 "시간끌기 작전"에
넘어가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불법파업에 미적지근한 정부 여당의
태도를 비난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정치적인 부담이 큰 여당 단독통과라는 수단을
택했을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냐"며 "정부가 정치논리에 밀리고
여론에 질질 끌려갈 경우 노사관계개혁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 전경련은 14일 회장단회의를 열어 재계의 입장을
재정리, 정부의 엄정한 법집행을 촉구할 계획이다.

또 20일 입법예고되는 노동법시행령에서도 노동계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
들여 노동법개정 자체를 "절름발이"로 만들지 않도록 건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또 최근 국내 노동법개정에 대해 노동계편을 들고 있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ILO(국제노동기구)등 국제기구에 대한 재계
차원의 홍보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관계자는 "복수노조를 3년후에 허용키로 한 만큼 노동계가 요구해온
소위 3금은 사실상 완전히 풀린 것"이라며 "새노동법에서 노동자들이
불리해진 것이 전혀 없는데도 국제기구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경련은 이들 국제기구들이 한국의 경제상황과 노동법개정 내용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전달하고 사용자 단체의 대표단
파견 횟수도 늘려 갈 계획이다.

어쨌든 재계는 정부가 그동안의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남에 따라 이번 파업
사태를 "노.정갈등"이라며 구경만 하던 입장을 바꿔야 하게 됐다.

사용자까지 가세하는 "3파전"으로 노동법개정 파문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