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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다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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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방이란 원래 차를 마시며 음악 등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의 구실을
    했었지만 오늘날엔 상거래나 회사업무 등 경제활동에 이용되는 생활공간의
    구실도하게 됐다.

    영업행위를 위한 본격적 다방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로
    광복후 6.25사번등 격동기를 거치면서 다방의 기능과 양상등이 크게
    변화하게됐다.

    다방이 생기게 된 근본요소는 다도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등 다른 동양문화권에 비해 다도문화가 그다지
    발달하기 않았었다.

    그래서 서민차원의 다방은 없었고 국가차원에서 제도적 배려만 있었다고
    할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엔 "다연원"이라는 전문으로 차만 마시는 장소가 있었고
    고려시대엔 차와술 과일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다방"이란 국가기관이
    있었다.

    또 조선시대엔 다방이 리조에 속하는 관사로서 외국사신들의 접대로
    맡아보는 장소가 됐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에선 대체로 차에 대한 관심이 줄고 손님 접대는
    일반적으로 차보다 술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다방 대신 술집이 발달하게
    됐다.

    근대적 의미의 다방은 1923년을 전후해 명동의 "후다미"와 충무로의
    "금강산"등을 들수 있다.

    그후 27년엔 이경손이 관훈동 입구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개업했는데
    이겸손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으로 그가 직접 차를 끓인다고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또 33년을 전후해선 영화연극인 화가 음악가 문인등이 각자 특색있는
    다방을 우후죽순격으로 차려서 다방문화를 꽃피게 했다.

    그후 광복과 6.25전쟁의 혼란기를 겪으며 다방은 종래의 문화다방에서
    산업다방으로 변하게 됐다.

    그러나 6.25동란직후엔 문화시설의 부족으로 종합예술의 장소구실을
    하기도 했고,50년대엔 당시의 사회문제였던 고등실업자의 온상구실을
    해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얼마전 보도에 의하면 지난 94년 3만2,634개였던 전국의 다방수가
    올해엔 2만3,418개로 무려 39.4%나 줄어들었다 한다.

    이 같은 다방 수의 감소는 우리의 생활수준의 향상과 생활패턴의 변화가
    요인중의 하나기 되겠지만 그밖에도 90년대 들어 "자텡" "도토루" "사카"
    등 커피전문 책임점의 등장과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자판기 등에서도커피
    를 팔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 된다.

    다방문화의 성쇠를 보면서 새삼우리 생활문화의 변천을 느끼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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