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상업성이 우선이냐, 영화의 예술성이 먼저냐"

지난주 미국의 차세대 텔레비전(디지털)의 방영방식이 발표되자 할리우드의
영화감독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오로지 방송사들의 장삿속만 반영되고 영화의 예술성은 무시된 결정이라는
것.

비록 잠정타결이지만 이 방식대로라면 차세대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영화
화면은 지금처럼 일부가 잘려나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앞으로 폭이 넓은 와이드비전이 대중화되더라도 영화를 극장처럼 완벽하게
방영하기 위해선 방송사에서 기술적으로 조정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영화계에선 줄기차게 이 기술적인 조정을 요구해 왔으나 지난주 미 연방
커뮤티케이션위원회에서 방송계의 주장에 밀려 버린 것이다.

"차세대엔 안방에서도 극장에서처럼 제대로 영화예술을 감상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화가 기술적인 손상없이 제대로 방영되어야 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끄는 영화감독단체와 일부 제작자들이 이 숙원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관철시키려는데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현재 텔레비전방송은 가로 세로 4대3의 비율인데 반해 영화는 대략 2대1의
비율이다.

이로인해 텔레비전 영화는 기술적으로 어쩔수 없이 상당부분 잘려 나가게
돼있다.

스필버그가 이끄는 할리우드 감독협회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10~15cm 잘라버리고 감상하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고 불평해 왔다.

스필버그 감독은 실제로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자신의 작품을 절대 보지
않는다.

영화인들이 이 문제에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또다른 이유는 차세대
디지털방송에 대한 영화인들의 기대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 디지털텔레비전은 극장과 맞먹을 정도로 선명한 화상을
내보내는데다 화면도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다.

극장식 입체음향(사운드)까지 가정에서 즐길수 있게 하는 기술은 이미
상품화된 상태.

안방 극장이 대중화될수 있는 기술적인 난관은 모두 해결된 셈이다.

허리우드로선 차세대텔레비전 방송의 영화방영 방식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미국 연방 커뮤니케이션 협의회의 잠정결정은
영화인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방송사들은 그들 나름대로 영화인들의 요구를 거부할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스필버그등의 주장대로 영화를 손상없이 그대로 내보내려면 텔레비전
화면의 위와 아랫부분을 공백으로 남길수밖에 없다.

이 경우 텔레비전과 영화 영상간에 시각적인 균형이 깨지게 마련.

영화광이 아닌 대부분의 이런 불균형상태에선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에 대해
심리적인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방송사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광고수입이 떨어질 것이고 영화방영의 상업성에 걸림돌이
될 것이 뻔하다.

영화인들은 방송사와의 싸움이 힘들어지자 영화배급사에 긴급응원군을
요청했지만 헛수고로 끝났다.

영화배급사들도 방송사에서 들어오는 영화방영료수입이 워낙 크기 때문에
방송사의 비위를 건드려서 좋을게 없다고 판단, 발을 빼버렸다.

이제 영화인들은 컴퓨터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차세대 디지털 방송은 컴퓨터에서도 텔레비전과 같은 화질과 사운드(음향)
를 재현해 낸다.

영화인들은 각별히 화상정보에 관심이 높은 애플컴퓨터등을 등에 업고
방송사를 상대로 힘겨운 로비전을 펼친다는 전략을 짜고 있지만 아무래도
패색이 짙어 보인다.

< 이동우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