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부도기업의 부동산담보물건 매각을 지연하는 진풍경이 빚어지고
있다.

한 기업이 여러 은행으로부터 각각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은뒤 부도를
내는 경우, 경매를 먼저 실시하는 은행의 담보처분 대금에서 근로자들의
임금채권이 우선변제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다른 은행이 담보로 잡은 부동산을 먼저 처분하기를
기다려 경매신청을 꺼리고 있다.

이로 인해 부도발생후 대체로 1개월 안팎에 실시되던 경매는 최근들어
몇 개월이 지나도 경매신청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특히 일부 은행은
경매신청을 냈다가 이를 취하, 후순위를 택하는 사례도 종종 빚어지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경매를 서로 미뤄 채권회수자체가 어려워지자 최근 외환은행
과 한 보험사는 근로자임금채권을 공동으로 부담하기로 신사협정을 맺고
담보물건을 처분하기도 했으나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경매지연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대법원판결에서 은행이
부도기업의 담보물건을 처분할 때 근로자의 3개월치 월급과 89년 3월이후
퇴직금 전액을 우선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데 따른 것이다.

이때 판결로 담보부동산 처분대금에서 우선 변제되는 근로자임금채권이
크게 늘어나자 은행들이 서로 부동산처분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경매가 지연되고 채권은행간에 분쟁의 소지도 높아지자 은행연합회
는 지난해말 임금우선채권에 대해 분배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 오는 26일 실무자회의에서 은행들의 의견을 종합할 예정이다.

그러나 분배대상에 포함되는 담보물의 범위에 대해 채권은행간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쉽사리 결론이 나기는 어려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은행들은 연합철강및 포철이 부도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채권을 대신
지급한뒤 부동산담보권자인 서울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대법원이 "임금채권자는 경매절차에 참가해 우선변제권을 주장하면서 배당
요구를 할수 있다"고 판결을 내린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은행들은 이를 "임금채권자의 지위가 인정되면 다른 저당권자에 우선해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 이같은 경매관행에 변화를 줄수
있다고 보고 판례해석에 골몰하고 있다.

즉, 근로자 임금채권을 대신 변제해준뒤 담보물건을 처분한 다른 금융기관
에 대해 이를 갚아주도록 요구할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