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질적인 도약을 하려면 금융자율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오래전에 형성됐다.

그러나 금융이 자율화된다고 금융산업발전이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70년대 후반에는 금융자율화에 따른 경쟁심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미국의 수많은 저축대부조합(S&L)들이 파산했다.

또한 80년대 후반에는 일본의 금융계가 엔고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저금리정책에 편승해 방만한 경영을 한 결과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고 몸살을 앓고 있다.

이밖에도 영국 베어링 은행의 파산이나 일본 다이와 은행의 거액
투자손실에서 보듯이 내부통제의 허술함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리 금융계에도 과거 수신제일주의 경영방식에서 비롯된 각종 편법과
비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번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문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금융환경 변화에 대비하고 책임경영을 촉구하기
위해 제도정비를 서두르는 동시에 경영감독을 철저히 해야겠다.

사실 그동안 재정경제원과 은행감독원 등은 이점에 관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금보험제도의 도입을 위해 입법예고를 했으며,경영 공시제도를
강화했고,대손충당금을 적립해야 하는 부실채권 범위에 고정여신의
일부까지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정비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원칙이 없어 유감이다.

예를 들면 모씨의 국민은행장 연임자격을 놓고 은행감독원은 지난
92년7월 국민은행이 "정보사 땅 사기사건"으로 기관경고를 받았을때
관련 임원이어서 자격이 없다고 했다가 막상 정부가 승인하자 추인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은 다른 경우와 형평이 맞지 않으며 "은행장
선임에 관한 지침"이 만들어졌던 지난 93년5월에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 논리적으로도 타당성이 약했다.

뒤늦게 은행감독원은 은행임원이 문책을 받아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면책돼 경영진이 될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또 한가지는 유가증권 평가충당금 적립을 "유연하게"적용하는 점이다.

올 상반기에도 15개 시중은행의 주식평가 손실이 1조원을 넘어 대부분의
은행들이 적자를 내게 되자 평가손금액의 50%만 적립토록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럴바엔 평가손 금액을 100% 적립토록 규정한 "금융기관 경영지도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을 아예 바꿔야지 지키지도 못할 규정을 강요할
필요가 있는가.

또한 증권 보험등 다른 금융기관들은 평가손 충당금을 적립하지
않고 있어 불공평하다고 하는데,은행의 적립기준을 낮추기보다는
증권사와 보험사도 충당금을 적립토록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본다.

끝으로 최근 법정관리중인 모회사가 부도를 내 물의를 빚고 있는데
채권은행의 책임은 없는지 따져야 하며 비자금사건에서 부정한 돈을
세탁하는데 공공연히 개입한 금융기관들에 어떤 불이익이 주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며 사후 책임추궁보다 일관성있는 사전감독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