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초 한국산 대형축전기가 70%가 넘는 고을의 반덤핑판정을 받았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관련 업체들이 영세해 자료제출에 불성실 했기 때문
이었다.

사건은 터졌으나 현지 변호사 조차 고용하지 못했다.

대만의 영세업체들도 비슷한 입장에 몰렸었다.

대응능력의 미숙으로 "수출중단"이란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반면 EU가 지난 92년말 한국산반도체에 대한 반덤핑예비판정을 내렸을때
한국업체들은 영국 독일 네덜란드정부의 관계자들을 설득, 이를 수입가격
감시제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그결과 당초 6개월간 내야할 잠정관세를 4개월만 부과하고 끝냈다.

이로인해 국내반도체 3사가 절약한돈은 한회사당 평균 10억원에 이르렀다.

효율적인 로비는 기업이익과 직결된다.

EU위원회가 원하는 것을 신속히 파악,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은 생존의
필수 요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브뤼셀 로비전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느 수준일까.

걸음마단계라는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로비전의 주역인 기업들의 활동이 양과질 모든면에서 그만큼 취약하다는
얘기다.

한국기업의 로비역사는 지난 90년 LG전자(당시 금성사)의 김동휘소장(현재
본사근무)이 브뤼셀 사무소를 개설하면서 시작됐다는게 현지의 일반론이다.

이는 일본에 비해 10년여 뒤진 셈이다.

게다가 한때 유럽통합에 대비, 유행처럼 브뤼셀에 사무소를 냈던 상당수
기업들이 2,3년만에 철수, EU집행위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유럽의 수입규제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으나 관련
업체들은 현지사무소를 개설할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기업들의 대EU 통상전략은 한마디로 수입규제를 당하면 그때가서
변호사를 사면되고 그래도 그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현지에 공장을 세운다는
식이다.

이로인해 한국에 산업공동화가 발생해도 관계치 않겠다는 입장인듯하다.

외국기업과는 달리 문제해결에 대한 대정부 의존도도 지나치게 높다.

줄리언 페일슨 유럽공인회계사협회 브뤼셀대표는 "한국기업 대표들은
브뤼셀을 방문하면 하루에 10여차례 미팅을 갖는다"며 방향을 잡지 못한채
허둥대는 상황을 꼬집고 있다.

그러나 일본기업들은 다르다.

전자산업의 경우 소니 마쓰시타 히타치 샤프등 주요업체들은 모두 현지
사무실을 열고 있다.

구성원도 영국 옥스포드출신이나 유럽 현지법인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통상업무 베테랑들이다.

지난 10여년간 유럽 가전산업협의회등 각종 산업단체와 매년 세미나를
갖는등 "외곽지원 세력"도 형성해 놓았다.

브뤼셀에 있는 대부분의 법률사무소는 일본어를 활동어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그 결과는 명료하다.

한국의 대유럽 적자가 해마다 늘어나면서도 계속적으로 수입규제와 시장
개방압력을 받고 있다.

지난 80년대 유럽으로부터 반덤핑 공세에 시달려온 일본은 이제 그 후유증
에서 벗어나는 분위기다.

이희범 주EU대표부상무관은 국내기업들의 로비능력이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절대적 열세를 보이는 첫번째 이유로 기업가들의 인식부족을 꼽고
있다.

현지에 사무소를 개설하는데 드는 비용을 지나치게 의식할 정도로 "로비의
경제성"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터지면 변호사를 찾기 위해 현지에서 허둥대는 것도 이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킨굼프 법률사무소의 조스 루프 상담역은 "좋은 변호사를 정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고 전제.

"그러나 기업이 직접 집행위와 접촉하는게 보다 효과적이다"라고 강조했다.

변호사의 도움은 문제해결의 2차적인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영국제약산업협회(ABPI)의 벤 헤이스 홍보담당이사도 "영향력을 미치려는
행위만이 로비의 목적은 아니다. 우리의 입장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며 예방적 차원의 로비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과 유럽간 교역규모는 지난해 2백억달러를 넘어섰다.

EU통합에 대비, 영국 스페인 독일등 유럽 각국에 한국의 생산기지가
설립되고 있다.

유럽은 이제 한국의 주요한 경제파트너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이에 걸맞는 로비채널을 갖추는 작업이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여 나가는
최상책인 것이다.

"한국도 이제 정보입수및 이에 대응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EU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수있는 수준까지 올라서야 한다"는 이상무관의 지적을 고려해봐야
할때에 이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