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 KIET 연구위원 >

지난2년간의 꾸준한 규제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
효과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선진화된 경제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한편 향후 규제를 신설하는데에도 올바른
원칙을 갖춰 두어야 할것이다.

규제완화의 효과가 보다 실효성있게 느껴지게 하려면 우선 완화대상
과제로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정책적 규제를 선정하여 과감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 경우 이들 규제에 대해 개별과제 하나하나를 검토해 나가는 것은
규제들이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만큼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것이다.

따라서 이들 규제에 대해서는 전혀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완화작업을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른바 "제로베이스"로부터의 규제완화가 필요한 것이다.

마치 낡은 도시를 재개발하여 신시가지를 만들어 내듯이 낡은 규제체계
전체를 불가피한 부분만 남겨두고 모두 고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새롭고
효율적인 규제체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개별 규제의 존속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더라도 경제에 부담
이 적어지는 보다 개선된 형태의 규제로 대체해 나가야 한다.

또한 규제완화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일선 공무원들이 이를 의도
한대로 적용해 주어야 할것이므로, 규제완화에 애쓰는 만큼 규제완화의
내용을 일선 공무원에게 교육하고 그 적용실태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정부는 한편에서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다른 한편에서 규제를
만들어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각종 규제들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 나가는 지속적인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는 것 못지않게 불가피하게 필요한 규제에
대해서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올바른 원칙을 확립 운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첫째로 새로운 규제 체계는 현재의 포지티브 시스템의 틀에서 벗어나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의 포지티브 시스템하에서는 모든 규제가 해당 경제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한후 필요성이 크다고 인정되는 부분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해
주는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경제여건이 바뀔때마다 다시 예외의 범위를 넓혀 규제를 완화해
나가야 하는 불편이 따랐다.

그러나 네거티브 시스템하에서는 모든 규제가 일단 해당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하되 예외적으로 특정분야에 대해서만 금지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거꾸로 새롭게 규제할 필요성이 대두될때에 새로운 분야를
규제대상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게 될것이므로 그만큼 규제하는 것이
어렵게 될것이다.

둘째로 새로운 경제규제를 만들때에는 해당부처가 입안 당시에 규제의
목적과 그에따른 편익(benefit)을 제시함과 동시에, 기업들이 지게될 부담
혹은 비용(cost)을 구체적으로 계산하여 함께 제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로써 규제의 목적만 강조하는 담당 공무원들이 그 규제로 인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생각할수 있게 되고 적어도 그 악영향을 줄이는 규제를
찾아내려 할것이다.

셋째로 새로운 경제규제를 만들때에는 일정한 시간이 흐른후에는 그 규제가
자동적으로 폐기되거나 존속 여부를 검토하게 하는 일몰조항(sunset
clause)을 의무적으로 삽입하게 해야 할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규제들은 만들어진 당시의 여건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존속됨으로써 시장경제의 흐름을 가로막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넷째로 규제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더라도 직접적으로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 나은 대안이 없는가를 검토하는 작업을 의무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규제는 항상 기업에 순응비용이라는 부담을 주게되므로 가능한한 새로운
규제를 만들지 않고 시장기능에 맡기도록 하되 어쩔수 없는 경우에도 민간의
자율적인 관리 혹은 시장기능에 의존한 규제등을 먼저 고려한후 최종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
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기업들의 불법적인 경제활동을 막는 방법으로서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소비자들의 고발과 그에따른 막대한 보상책임(고발한
소비자뿐만이 아니라 여타 모든 소비자도 보상)을 통한 방법이 선호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각 규제(법안및 규정)를 만든 책임자를 명기하도록 하여 그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 등에 대해서 책임지도록 함으로써 공무원들로
하여금 규제를 만드는일에 신중해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의 민간경제에 대한 통제 관리 의지가 강하고,
공무원들도 만일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한 책임의식이 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규제를 만들어내는 속성이 있고, 이에따라 많은 규제가 생성
당시에 충분한 검토없이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