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에서 주차설비를 만드는 K공업의 P사장은 건설업체로부터 받은
5천5백만원짜리 어음을 들고 평소 거래하던 상호신용금고를 찾았다가 낭패를
당했다.

굴지의 건설업체가 발행한 어음이라 그동안엔 담보없이 할인을 했왔는데
느닷없이 부동산담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할인해 줄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여러번 사정했지만 결국 신용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만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중견 중소기업부도가 줄을 이으면서 금융기관들이 담보요구를 강화하자
중소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같은 현상은 은행은 물론이고 제2금융권도 마찬가지여서 가뜩이나
담보부족으로 여려움을 겪던 중소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칫 담보를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으로 연쇄적인 부도를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우려마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형건설업체와 몇몇 중견그룹의 자금악화설이 퍼지고 유원건설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은행감독원의 검사를 받게되자 금융기관들이
담보확보에 더욱 적극적이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수원 근방에서 공장자동화설비를 만드는 H사는 거래은행에 대출을
요구했다가 엄청난 담보를 요구하는 바람에 고심하고 있다.

부동산은 모두 담보로 들어가 있어 더이상 제공할 것이 없었다.

기계설비를 제공하겠다고 하자 기계가액의 50%만 인정하되 그것도 1천만원
이상짜리만 쳐주겠다는 것이다.

대신 1천만원짜리 이하는 모두 부대담보로 넣으라는 요구였다.

몇천만원 대출받으려다 수억원어치의 설비 모두를 넣어야 할 판국이다.

이런 상황은 업종 지역을 불문하고 일어나고 있는데 특히 중소기업을 주로
지원한다는 은행이 담보확보에 더욱 혈안이라고 업체들은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그동안 발생한 중소기업부도로 확보한 부동산이 많지만 부동산가격하락으로
처분이 힘든데다 실제 경략가격은 싯가의 절반에 불과한 사례가 많아 피해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추석을 전후해 중소기업담보난 완화책으로 몇몇 은행들이 감정가격
의 1백%까지 대출해주겠다고 선언해 놓고도 이제와선 또다시 감정가격
(정확히는 감정가격에서 임차보증금등을 제외한 최종심사가격)의 70% 이하만
대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병서 페인트잉크조합이사장은 "은행이 대출만기때 일부 대출금을 연장해
주면서 기존담보 이외에 추가담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 중소기업의 담보
부족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부에서 기업에 신용대출을 권장하다가도 부도사건이 터지면 관계자
문책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중소기업만 골병든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동차 반도체 서비스등 일부호황업종엔 돈이 넘쳐나고 중소제조업체
들은 자금난에 담보난까지 겹쳐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선진국의
신용평가기법을 조기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경우 신용평가기법이 발달해 이를 토대로 대출을 해주면 나중에
부도가 나도 관계자들이 징계를 당하지 않을뿐더러 중소기업금융공고법에
의해 국가가 금융기관손실액의 일정비율을 대신 물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 남동공단의 서종원 선광전기사장은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역별
신용보증조합설립을 더욱 빨리 추진하든지 지방자치단체나 경제단체 대기업의
출연기피로 실현성이 희박하다고 판단되면 기존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여력을
대폭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은 경기호황의 혜택을 거의 맛보지 못하고 있는데다 금융권의
담보요구가 갈수록 심해지면 결국 금융문제로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고
정부와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