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협상이 큰 혼선을 빚을 전망이다.
지난 2년간 노/경총이 합의한 임금인상안을 토대로 협상을 벌여온 단위
사업장 노사는 중앙단위의 노사가 최근에 각각 제시한 임금인상안을 기준
으로 삼아 협상을 벌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또
다시 나오게 됐기 때문이다.
이형구노동부장관은 이날 정부의 임금인상안 제시방침에 대해 "중앙노사가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적정수준의 임금교섭준거를 제시하는 방법이 교섭의
비용을 줄이고 자율적 교섭관행을 정착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최선이지만
노,경총이 단독안을 내놓은 상태에서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노,경총의 임금요구율 격차가 많이 나는 마당에 이를 노사자율협상에 맡길
경우 상당한 갈등과 부작용을 겪게 될것이란 얘기다.
따라서 정부는 단위사업장노사가 기준으로 삼을 적정수준의 임금가이드라인
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노동전문가들은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은 노사협상에 큰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록 대학교수들로 구성된 공익연구단에 의해 도출되더라도 노사자율에
의한 임금가이드라인 만큼의 효력을 발생하기 어려운데다 정부의 개입은
오히려 단위사업장으로부터 거부감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노.경총이 제시한 임금요구율 격차는 최고 8%포인트(노총 12.4%,경총
4.4~6.4%)에 달해 임금협상을 앞둔 단위사업장 노사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노총산하 노련이나 단위사업장노조들은 이미 노총의 인상안보다 높은 최하
13%대에서 최고 21%대까지의 자체 임금인상률을 제시해 놓고 있다.
노총산하 전력노련이 21.6 9%의 임금인상안을 확정한 것을 비롯, 광산노력
(15.1%), 금융노련(13.8%), 자동차노련(16.7%), 금속노련(14.1%)등도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안을 마련, 단위사업장에 내려보냈다.
또 재야노동단체인 민주노총준비위원회(민노준)도 14.8%의 임금지침을
발표한 상태이고 민노준 계열인 대우조선노조는 이보다 약간 높은 14.92%의
임금인상안을 회사측에 제시해 놓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될 경우 단위사업장노사는
노.사,정 3자의 임금안을 놓고 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혼란을 겪을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반대의 견해도 만만치 않다.
노동전문가들은 한편으로는 노.경총이 단독임금인상안을 제시한 상태에서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은 오히려 단위사업장의 협상을 원활하도록 도와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공익위원들이 작성한 임금가이드라인을 정부가 제시하더라도 임금안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정도 형성돼 있으면 현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적지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공익위원들의 임금가이드라인은 노.경총이 제시한 임금요구율을 모두 고려
하겠지만 국가경제와 생산성, 임금안정등을 감안해 적정수준의 임금인상률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일부 강성노조측에 거부감은 주겠지만 임금안정을 바라는
대부분의 사업장에는 설득력있는 가이드라인으로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노.경총이 임금합의가 안돼 비빌 언덕이 없어진 상태에서 임금협상이
교착상태에 봉착할 경우 단위사업장노사양측은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을
"심리적 타결기대선"으로 여길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다 노사양측의 성숙된 분위기도 노사관계안정을 지속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87년 민주화선언이후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었던 현장사업장 노사는
이제 분규가 노사양측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결코 실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 무리한 요구나 쟁의행위는 쉽사리 결행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임금협상때만되면 파업과 태업을 되풀이하는 악순환을
거듭했던 시내버스노조가 올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협상을
타결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무튼 정부의 임금가이드라인이 9년만에 나오는 올해 노사관계는 전반적
으로 불투명한 가운데 안정기조를 보일 것이란 예측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 윤기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