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완전 지배할 듯한 인간의 첨단과학이 이즈음처럼 무력감을 맛보기도
힘들것 같다.

새해 들어서만 지진 홍수 폭설등 대재해가,그것도 선진국들에 집중돼
한계상황에 놓인 생명체,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더구나 물의 과부족이 동시에 빚어지니 불가사의다.

같은 유럽에서도 서부는 몇십년만의 대홍수로 방죽이 터지고, 남부
이베리아 반도엔 식수조차 모자란다.

극동의 한반도는 그 먼 이베리아 반도와 사정이 유사하다.

지난해 영.호남 일부의 한발현상은 1년이 가깝도록 해갈은 커녕 해가
바뀌면서 북상을 거듭, 이제 중부권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 관측으로는 가까운 시일내 큰 강우는 기대밖이라는 비보가 들린다.

홍수와 달리 가뭄현상은 하루이틀 사이의 돌변현상이 아니다.

사실 농사는 벌써 망친데다 공업용수 수요가 큰 포항일대의 갈수의 어려움
은 여러달 동안 심화돼 왔다.

그럼에도 그 외침은 물사정이 심각지 않은 지역엔 귀담아 들리질 않았고
정부의 관심역시 대수롭지 않았다.

그것은 무성의라기 보다는 하늘에 거는 기대를 깔고 있었다.

그러나 몇주째 눈.비가 오리라던 일기예보는 번번이 무산되고 급수제한
지역이 강원 충청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사태는 달라졌다.

더구나 오는 4월까지 큰 강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예측은 절박을 더한다.

부랴부랴 환경부등 중앙부처와 시도들이 제한급수에 세세한 절수대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놓고 있다.

왜 이제야 서두르느냐고 따지기 보다 우리 모두가 호응할뿐만 아니라 물을
효율적으로 쓰는데 자발적 노력을 모아야 한다.

급할수록 생각을 깊이 해야 한다.

이러다가도 비만 내리면 언제 그랬더냐는 듯 까맣게 잊는 한해대책의
쳇바퀴 놀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엘니뇨, 오염과 온난화 현상등 장기적으로 기후의 이변화가능성은 짙어만
간다.

목마를 때 별안간 서두르는 단기.응급 절수대책뿐만 아니라 장기.근본
물대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응급대책은 모두의 참여만 전제된다면 그런대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물사용의 효율화, 급수 시스템의 근원적 재구성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으로 첫째 식용수와 중급수(또는 비식용수) 수급의 이원화, 둘째
각지역 수계간의 간선수로연결, 셋째 물값책정의 수혜자원칙 확대, 넷째
산업용수의 자체확보 지원을 들수 있다.

생활향상에 따른 물수요의 계속 폭증은 막을수 없다.

다만 귀중한 수자원을 목적에 부합하게 활용하는 길밖에 없다.

그것은 발상전환 없인 불가능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