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이 폭발했다. 그것만으로도 위험한데 그 밑에 가스 포켓까지 생겨 더 큰 폭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랬다가 주변 마을에 불이 번져 5000명 정도 되는 주민이 모두 타죽게 생겼다. 해결 방법은?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가공할 만한 폭발을 일으키는 니트로글리세린 한 트럭 분을 가져와 터뜨려 가스 포켓을 없애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걸 운반하려면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쳐야 하고, 잠깐 한눈팔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급경사 도로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위험하긴 해도 이 정도면 천천히 트럭을 몬다면야 어렵지 않게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곳은 중동(으로 추정되는) 어느 국가의 분쟁 지역이다. 여기저기서 도적들이 출몰해 총기로 위협을 가하고 잠잠하다 싶어 안심하고 전진할 때면 어디 묻혔는지 모를 지뢰가 터지기도 한다. 이러니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면 니트로글리세린 수송 작전에 참여할 리가 없다. 프랭크(프랑크 가스탐비드)와 알렉스(알반 레노이어) 형제는 다르다. 이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해야 할 이유가 있다.최근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프랑스 영화 <공포의 보수>(2024)의 줄거리다.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고 있는 프랑스 출신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공포의 보수>(1952)는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베스트 10을 꼽을 때면 빠짐없이 언급하는 영화다.이 작품은 <엑소시스트>(1973) <프렌치 커넥션>(1971)으로 ‘아메리칸 뉴 시네마’, 즉 할리우드 영화의 새로운 조류를 이끈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소서러 (Sorcerer, Wages Of Fear)>(1977)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공개된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영국 시인 T.S.엘리엇 (T.S.Eliot, 1888~1965)의 대표작 ‘황무지 (The Waste Land)’의 시구이다. 4월의 찬란함과 강한 생명력을 T.S.엘리엇은 ‘잔인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학창 시절 ‘잔인한 4월’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제야 싹이 움트고 꽃이 피는 이 계절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는 그 찬란함, 그 잔인함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달인 것을 깨달았다.우리나라에서 이번 4월의 가장 큰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선거이다. 각자의 정치적 색깔과 입장이 다르다 보니 선거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울고 웃었고, 그 현장에는 죽음의 고통과 새로운 의지가 교차하고 얽히는 모습을 읽었다. 4월, 선거 안에 흐르는 정반대의 감정선을 지켜보고, T.S.엘리엇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두 가지 다른 에너지가 공존하는 발레 동작을 떠올리게 된다. 그 동작은 ‘그랑 파 디브레스 (grand pas d’ivresse)’이다. 이 동작은 19세기 고전발레부터 등장했던 것은 아니고 발레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영역과 표현이 확장되면서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움직임이자 용어이다.언어 그대로 뜻풀이를 하자면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동작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이 동작에서 생명을 느끼는 걸까. 그리고 어떻게 이 동작과 용어는 발레에 등장하게 되었을까.개인적으로 이 비틀거리고 죽어가는 동작에서 생명력을 느낀 건 프랑스의 저명한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 (Angelin Preljocaj, 1957~)가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만든 <스노우 화이트 (Snow White,
어디까지 사진인가? 사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디지털기술에 인공지능(AI)까지 일반화되고 있는 요즘, 사진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사진의 자리, 마음의 좌표’를 주제로 ‘2024 전주국제사진제’가 개막했다. 올해 17회를 맞는 이번 행사에선 디지털의 시대에 사진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모색한다. 주제전 외에도, 인공지능(AI) 사진작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미래를 향한 시선’ 전, 전주 사진가들의 지역 문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꾸민 ‘전주로컬문화사진전’, 신진 작가들의 가능성을 조망할 수 있는 ‘뉴 포트폴리오’ 전 등 국내외 100여 작가들이 참여한 8개 섹션이 관람객을 맞는다. 주제전에서 눈길을 끄는 이나현의 작품 ‘Noise’. 공간 가운데 선 투명한 벽면 가운데로 사물이 관통하고 있다. 사물은 합성섬유로 생산한 제품처럼 보이고, 벽면은 플라스틱으로 추측된다. 페인트를 칠한 듯 보이는 매끄러운 바닥은 이 모든 사물들을 은은하게 반사시키고 있다. 추상적 설치미술작품처럼 보이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이어붙여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의 상상이 빚어낸 이미지들은 현실감 충만하다. 이것이 사진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인공과 가상을 결합해 열어놓은 새로운 이 공간은 작가의 예술적 방향성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준다. 이민지가 요가 수련자의 동작의 일부분을 담은 ‘숨’은 사진가의 시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요가수련자들은 호흡과 근력과 유연성을 모두 모아 동작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작가는 동작과 동작 사이에서 탈락하는 것들을 붙잡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