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힐튼호텔의 전화교환실장 심재향씨(여.55)는 요즘 남다른 감회에
젖어든다.

전화교환업무에만 종사해온지 무려 35년. 내년 1월로 다가온 정년퇴직을
불과 두달 앞두고 그동안의 생활을 반추하고 정리하다보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세월이 느껴진다.

"전화에도 어떤 철학이 있습니다.

뭐라고 꼬집어 얘기할수는 없지만 전화선너머로 흐르는 사람간의
신뢰나 애정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평범한듯 들리지만 심씨의 얘기에는
외곬35년의 신념과 힘이 묻어있다.

그녀가 전화와 인연을 맺은것은 지난 59년 수원여고2학년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원우체국 전화교환대에 앉게되면서부터였다.

그동안 심씨가 거친 곳은 수원우체국을 포함,중앙전화국 사보이호텔
메트로호텔 한국비락회사 그랜드호텔 웨스틴조선호텔에 이어 현재의
힐튼호텔까지 모두 8곳. 힐튼호텔에는 지난 83년 호텔개관때 스카웃돼
10여년을 근무해왔다.

심씨가 가진 "전화노하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친절이다.

"친절한 전화는 그조직뿐만 아니라 전체사회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잣대도 될수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친절한 전화가 "마음"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손님이 요구하는 온갖 정보를 알어야하는데다 전화를 건 사람의
입장에 대한 충분하고도 빠른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란다.

실제 그녀가 외우고있는 전화번호는 어림잡아 1천개가 넘는다.

호텔내 주요시설 팩시밀리번호뿐만 아니라 1천여명의 직원이름과
서울시내 주요호텔 관공서 공항 터미널등의 전화번호까지 온갖것을
기억하고있다.

호텔이용에 관한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있는 셈이다.

심씨는 "앞으로 오퍼레이터는 과거처럼 단순히 선과 선만을 연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종 정보를 취득,전달해줄수있는 "정보조타수"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전화교환수의 역할도 바뀌어야된다는 얘기다.

또 오퍼레이터 자신이 변화되는 위상에 걸맞도록 끊임없는 자기개발노력을
병행해야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대학교육을 못받은 내자신도 영어와 일어,중국어까지 구사하는데
대학교육을 받은 젊은 사람들이 못한다면 순전히 노력부족 탓입니다"
그녀는 정년퇴직후 그동안 일일메모를 통해 축적해온 것들을 단행본으로
출간,후배교환수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싶다는 바램을 갖고있다.

또 기업체등에 대한 전화예절교육강연을 통해 "전화의 철학"을
널리 전파한다는 포부를 세워두고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로부터 강연요청이 쇄도하고있다는 귀띔이다.

"사회 어디선가 나를 필요로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큼 기쁜 일이
없습니다" 심씨의 외곬인생은 상당기간 지속될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