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마침내 아시아에 뿌리를 내렸다.

수년에 걸친 아시아화정책에 힘입어 호주는 아시아국가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특히 역동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아시아경제권에 성공적으로
편입,아시아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를 굳혔다.

한때 백호주의라는 배타적 대외정책으로 아시아인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호주로서는 엄청난 탈바꿈이 아닐수 없다.

지난 57년 일본과의 무역협정 체결로 시작된 "탈유럽입아시아"정책은 91년
폴 키팅총리의 등장이후 가속화돼 이제 호주에서는 전국민이 공감하는
국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키팅총리집권이후의 아시아화캠페인은 경제뿐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등
모든 면에서 호주를 변화시킨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다.

키팅총리는 취임일성으로 "호주는 아시아국가"라고 선언한뒤 유럽의
그늘에 안주해서는 더이상 살아남을수 없으며 아시아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시아담당부서를 통상부내의 최대 조직으로 강화하고 기업들에도
아시아진출을 독려하는등 강력한 아시아드라이브를 걸었다.

기업들도 이에 부응,아시아시장의 판로개척에 적극 나섰다. 이같은
아시아화노력은 우선 호주의 무역구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호주는 현재 총수출액의 67%이상을 아시아국가로부터 벌어들이고 있다.
이는 지난 50년대에 비하면 3배이상 증가한 것이며 오는 2000년께는 그
규모가 7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30년전만해도 전체수출의 절반이상을 차지했던 대유럽수출은 작년의
경우 13%로 크게 감소했고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아시아국가중 특히 한국 일본 대만 중국등 동아시아국가에 대한 호주의
무역공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동아시아에 대한 수출은 작년의 경우
300억달러에 육박,전체수출의 51.3%를 차지했다.

동아시아국가에 대한 수출규모는 지난 5년간 연 14%씩 증가해왔으며
이들로부터의 수입도 현재 전체수입의 40%에 달하고 있다.

아시아시장을 집중공략한 결과 호주는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무역액의
비중이 84년 27%에서 작년에는 39%로 뛰어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고속성장중인 아시아와의 교역을 확대함으로써 이들의 성장과실을 나눠
가진 셈이다.

아시아화물결은 경제분야에만 그치지 않았다. 과거 아시아정세에 초연한
자세를 견지했던 호주는 아시아의 화약고라 할수있는 캄보디아에 평화의
기반을 닦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91년 내전중인 4개정파를 파리로 불러들여 평화조약을 맺도록
외교적인 수완을 발휘,아시아국가들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와 매년 4차례씩 해상군사훈련을 실시하는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안보협력도 강화해가고 있다. 동남아지역에 참여하는 호주의
군사훈련은 지난10년동안 계속 늘어나 현재 연 24회를 넘고있다.

호주는 특히 한국 일본등과의 협력을 통해 아태지역을 포괄하는 경제
협의체인 아태경제협력회의(APEC)의 창설을 주도했다.

또한 이를 발전시켜 작년에는 APEC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올들어서는
이지역 최초의 안보논의기구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출범시키는
데도 기여를 했다. 이처럼 호주의 정치외교 중심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겨져 갔다.

아시아화정책은 교육계에도 새 바람을 일으켰다. 국민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일본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등 아시아계언어가 정규외국어로
속속들이 채택되고 있다. 현재 호주의 8개 주요외국어중 아시아계언어가
4개나 포함되었다.

최근에는 한국어도 일부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정규외국어로 가르치는등
호주의 아시아말 배우기 는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아시아교육재단(AEF)을 설립,3년동안 240만달러의 예산으로
전교육과정에 아시아테마를 가미하는 작업까지 벌이고 있다.

호주가 유럽계보에서 빠져나와 아시아에 입적한데는 무엇보다 세계
경제구도재편의 영향이 컸다.

지난70년대초 호주가 모국으로 여기던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은
자신들만의 유럽공동체건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럽의 경제르네상스를 꿈꾸며 경쟁력강화를 위한 단일시장결성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 갔다. 이과정에서 호주는 철저히 소외당했다.

게다가 전통적 우방인 미국마저도 캐나다 멕시코등 북미국가들과 한집
살림을 차릴 채비를 서두르자 고립감은 깊어만갔다.

따라서 호주에 남은 선택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뿐이었다. 아시아
에서 마저 소외당한다면 경제블록을 단위로 재편되는 신경제질서에
적응할수 없다는 위기감에서다.

또한 실업률이 11%에 달하고 30년이래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호주
로서는 보호주의를 조장하는 유럽과 북미보다는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아시아시장이 훨씬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아시아국가들이 제조업중심의 경제구조로 인해 호주에 대한 원자재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요인도 아시아편입의 메리트로 작용했다.

이밖에 자국에 대한 투자유치를 위해서도 아시아와의 관계개선은 필수적
이었다. 호주는 동남부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전대륙이 사실상 미개척지
나 다름없다.

자국경제의 도약에는 이들지역의 개발이 필요했고 여기에는 엔고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일본이나 경제성장으로 달러보유가 늘어난 한국
대만 등 아시아국가의 투자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호주인들은 자국의 미래가 아시아에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자신들을
먼저"황색화"해 아시아에 편입하는 길만이 이지역의 고도성장을 공유
하고 국가경제를 살릴수 있기 때문이다.

백호주의든 유럽전통이든 자국의 실리를 위해서는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이는 뚜렷한 경제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팅 현정부를
국민들이 지지해 온데서도 확인된다.

결국 호주의 아시아화는 달라진 국제환경에 적응하고 동시에 치열해진
경제전장을 헤쳐나가기 위한 국제화전략에 다름아닌 것이다.

<이영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