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산조를 만났다.

두 사람은 같은 공경 출신이어서 심정적으로 남달리 통하는 데가 있어서
산조는 솔직하게 모든 사실을 다 이와쿠라에게 얘기해 주었다.

사이고가 병든 몸이어서 마지막으로 살신보국을 하기 위해 조선국으로
가려한다는 말까지 들려주었다.

오쿠보에게는 털어놓지 않았던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이와쿠라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코언저리에 냉소를
떠올리며, "그건 살신보국이 아니라, 살신 해국이오"하고 내뱉었다.

자기의 명예만 앞세우고 나라야 어떻게 되든 아랑곳없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매도하고서 절대로 막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산조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표정은 무척 곤혹스러워 보였다.

다음은 오쿠보와 무릎을 맞대고 상의를 했다.

오쿠보는 이미 사절단으로 해외에 나가기 전부터 정한론을 반대하는
이른바 내치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와는 서론따위는 필요없이
곧바로 사이고의 조선행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의논했다.

끝내 사이고를 저지할수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이와쿠라는
물었다.

오쿠보는 얼른 대답이 나오지가 않았다.

"단검을 품고 회의에 참석하면 어떻겠소?"

이와쿠라의 나직한 목소리였다.

그 말에 오쿠보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이고를 죽이라는 뜻이 아닌가.

왕정복고의 대거사를 단행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 때는 단검으로 순순히 말을 안듣는 공무합체파를 살해하려고 위협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수법을 사이고에게 사용하려고 들다니..

오쿠보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번쩍 눈을 뜨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안됩니다. 사이고를 죽이다니요. 비록 지금은 국정에 관한 견해가
달라서 정적의 입장이 되었지만, 사이고는 나의 죽마고웁니다. 그리고
막부를 타도하고 왕정을 복고한 둘도 없는 동지가 아닙니까"

"음-"

냉혈적인 데가 있는 이와쿠라도 괴로운듯 두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유신정부의 수뇌부 전원회의가 개최된 것은 10월14일이었다.

그러니까 사절단이 귀국한지 한달 뒤였다.

그동안 이와쿠라는 또 하나의 거사를 한다는 각오로 자기 편, 다시 말하면
반정한파의 결속을 다졌고, 계획을 짰으며, 회의 소집을 되도록 늦추어
가며 사이고 쪽, 즉 정한파에 대한 설득작업을 은밀히 벌이기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