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코네에서 돌아온 산조는 사이고에게 결과를 정확하게 전해주질 않고
모호하게 얘기를 흐렸다.

"천황폐하께서 사이고공의 건강을 염려하시면서도 사이고공이라야
대원군과 얘기가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니까 가을까지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도록 하세요. 그래야 대원군을 눌러 이길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래요? 잘 알았어요"

사이고는 그 말을 재가가 난 것으로 알아들었다.

산조도 메이지 천황이 일단 보류를 하기는 했지만 사이고라야 대원군과
제대로 얘기가 된다면서 그의 파견을 받아들인 셈이니 사절단이 돌아온
다음 일차 논의를 하여 상주하면 틀림없이 재가가 나리라는 확신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던 것이다.

사실대로 사절단이 귀국한 후에 다시 논의를 해보라고 했다면 사이고가
자기를 의심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 알수가 없어서 일단
가을까지 골치아픈 그 문제를 덮어두려는 생각이기도 했다.

사이고는 가슴이 부풀었다. 꼭 이십년전 미국의 해군제독인 페리가
우라가의 앞바다에 와서 일본의 개국을 요구했듯이 이번 가을에는
자기가 조선국의 빗장을 열어젖히기 위해 가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하기도 했다.

페리는 군함을 이끌고 와서 무력으로 개국을 강요했지만 자기는 기선을
타고 가서 무력이 아닌 언변으로써 개국을 설득하게 되는 터이니 월등히
정정당당하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거려지기도 하였다.

그는 혼자서 9월20일을 출발 예정일로 잡았다. 그 전에 구미사절단이
귀국하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구애될것 없이 출발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앞으로 삼개월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에 사이고는 몇해전 막부를 타도하기 위해 출진을 했던 그때처럼
넘치는 정력과 기백을 돌이켜야겠다 싶어서 요양에 더욱 힘썼다.

태정관에는 드문드문 한번씩 등청을 하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거르지 않으며 때로는 사냥을 가기도 했다.

개를 좋아하는 사이고는 사냥때는 말할 것도 없고 산책을 나설 때도
반드시 애견을 데리고 갔다.

숲길을 거닐면서 사이고는 곧잘 개에게 말을 던졌다. 마치 개가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올 가을에 조선국에 갈때 너도 데리고 갈까. 어때?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떤 곳인지 너도 구경하고 싶겠지?" 그러면 개는 정말로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그래,그래. 좋아. 데리고 가지. 그러나 내가 대원군을 만나러 갈때는
너는 숙소에 얌전히 있어야 된다구.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