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해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100여 가지 중국산 제품에 수백억달러의 보복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철강에 이어 중국 때리기 ‘3탄’이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인 중서부 농업지대를 겨냥해 보복관세를 준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중 간 무역전쟁은 증시, 환율, 투자 등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뿐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 등 정치 환경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15일 내 관세 대상 및 세율 결정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공문에 서명했다. 이는 1974년 제정된 미 통상법 301조에 따라 최근 미 상무부가 한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행위에 대한 피해조사를 근거로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조사 결과 중국은 현지 진출 미국 기업들에 기술 이전을 강요함으로써 연 300억달러의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500억달러 '관세폭탄' 때리자… 중국도 트럼프 표밭 '정밀타격'
관세는 신발과 의류에서 가전제품까지 100여 가지 품목에 부과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 규모는 최대 500억달러(약 54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15일 이내 어떤 제품에 얼마나 관세를 부과할지를 결정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21일 미 하원 세입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응해 관세 부과뿐 아니라 투자 제한 패키지도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추가 제재가 뒤따른다는 의미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무부에 중국의 투자를 제한하고 관리·감독할 규정을 마련하라고 지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투자 제한은 중국 국유기업들이 미국 기업을 단지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군사적 용도를 염두에 두고 사들이고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다.

◆“트럼프, 말뿐인 중국에 발끈”

라인스 프리버스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이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대중국 무역불균형)에 대해 뼈다귀를 문 개처럼 집요하다”며 “그가 결코 내버려두지 않을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의 지난해 대중 무역적자는 3750억달러(약 400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는 최근 양국 간 무역갈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양제츠 당시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류허 당시 중국 중앙재경위원회 사무처장이 그럴듯한 말만 하고 행동을 보이지 않은 게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다고 전했다. 프리버스는 “협상 테이블에 모든 칩을 다 올려놓고 협상이 시작될 수 있도록 상대를 수세로 모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한 몇몇 나라와 일 대 일로 해결을 보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채찍과 당근으로 대응

중국은 정면 대결보다 ‘채찍과 당근’으로 상황을 관리해 간다는 전략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찍은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을 ‘정밀타격’하는 방안이다. 2016년 대통령선거 때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주(州)에서 많이 생산되는 콩과 수수, 돼지고기에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콩과 돼지고기를 많이 생산하는 상위 10개 주 가운데 8곳, 수수 최다 생산 10개 주 가운데 7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각종 스캔들과 특별검사 조사 등으로 흔들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카드다.

항공기 주문처를 바꾸는 방안도 거론된다. 항공기는 미국의 핵심 수출 품목 중 하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5년 미국 방문 때 보잉사 항공기 300대(380억달러 규모)를 구입하겠다고 밝혔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는 “통상전쟁은 매우 큰 경제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보잉사에 낸 주문이 에어버스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장치웨 뉴욕 주재 중국총영사는 21일 주미 중국상공회의소 주최 행사에서 “올해 더 많은 시장개방 조치가 도입될 것”이라며 “상당수 조치는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SCMP가 보도했다. 제조업뿐 아니라 통신 의료 교육 금융 등에서 광범위한 시장개방안이 준비되고 있다는 발언이다.

미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니컬러스 라디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금융 자유화를 어떻게 현실화하고 어떤 부문에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박수진/베이징=강동균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