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45분 만에 손님 쫓아낸 사장의 한숨
“5·5·10이면 좀 나아질까요?”

지난 16일 한곳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해왔다는 서울 종로의 A한정식집 사장에게 물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식사비·선물·경조사비 상한선을 3만원·5만원·10만원에서 5만원·5만원·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정부가 논의한 날이었다. 사장의 답은 짧았다. “그래도 죽겠지, 뭐.”

이 식당은 작년 9월 김영란법 시행과 함께 저녁 손님이 뚝 끊기자 ‘1인당 3만원, 두 시간 동안 술 무제한’이란 마케팅을 시작했다. 사장은 “시간 제한을 두니 술만 더 많이 드시는 것 같다”면서 “인건비 빼면 재료비도 안 남는데 이렇게라도 안하면 그나마 있던 손님마저 끊길 것 같아 고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며칠 전 점심 시간, 서울 광화문의 또 다른 식당에서도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이곳은 퓨전 한정식집으로 원래 1인당 5만5000원이 점심 코스 최저가였던 곳이다. 지금은 1인당 2만9000원으로 가격을 낮춰 영업하고 있다. 가격 대비 맛이 좋다는 평가에 단골도 많은 곳인데 낮 12시45분이 되자 주인이 “이제 나가달라”고 했다. 다음 손님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식사시간 45분 만에 마지막 음식은 손도 못 댄 채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쫓기듯 나가야 했다. 사장이 “김영란법 때문에…”라고 하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상가정보업체 점포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과 수도권에서 임대 매물로 나온 한정식집은 2559곳으로, 전년 대비 1022곳(66.5%)이 늘었다. 매물이 넘쳐나면서 평균 권리금은 7846만원으로 18.8% 하락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전국 소상공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2015년 대비 지난해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

일부 부처가 나서서 김영란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개정은 아직 미지수다. 김영란법은 2018년 12월31일까지 시행해보고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도록 돼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기본적인 생각도 그렇다. 100일도 안 돼 생계를 포기한 자영업자 앞에서 700일 넘게 더 버텨보라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