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대가로 최순실 일가에 뇌물을 주고 국회에서 위증을 한 혐의라고 한다. 검찰이 특정인을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는 것은 통상 어느 정도 혐의가 뚜렷하다고 판단될 때다. 일각에서는 그래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최순실 일가가 정부의 문화융성 사업에 편승해 개인적 이권을 챙기려 들었다는 혐의가 이번 사건의 개요다. 기업들은 모든 정권에서 그랬듯이 사업에 협조해 달라는 청와대와 관련 부처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특정 스포츠 종목에 대한 지원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경유착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이는 삼성만의 문제도 아니요,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하나의 관행이다. 우리가 아는 올림픽과 국제행사들이 모두 그렇게 이뤄졌다.

물론 바람직한 관행은 아니다. 그렇다고 특혜를 바라고 금품을 제공한 것도 아니었다. 이번 사건에서는 합병과 기금출연의 시간적 선후관계들이 말해주는 그대로다. 그런데도 특검이 대통령과 독대한 기업과 기업인들을 모두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을 위해 기업인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든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무릇 국가권력은 공공선을 위해 개개인이 희생한 자유의 몫의 총합이다. 국민이 국가에 권력을 위탁한 것은 누구든 공정한 법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또 국가에 공권력을 독점시켜 혹 개인들의 감정에 지배되는 사적 복수를 근절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런 점에서 법은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는 수단이나 정략의 도구가 될 수 없으며 질서정연한 법치의 안내자가 돼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공권력은 이미 정치의 시녀요 하수인으로 전락한 것 같다. 대중의 분노가 폭발한 상황에서 국가가 이를 조용히 누그러뜨리기는커녕 앞장서서 무차별한 집행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관여자, 이화여대 부정 입학 관계자, 기업인들에 대한 체포와 구속, 소환 남발을 보고 있자면 억지결부와 강압 수사, 공포정치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비례와 형평이라는 법의 근본 원칙은 온데간데없고 한편의 혁명재판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최순실 일가의 국정 농단을 철저히 조사해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국정농단과 관계가 있을 법한 심증이 가는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들이는 식이라면 이는 곤란하다. 그런 거친 집행자의 모습은 우리가 국가에 공권력을 독점시킬 때 기대했던 ‘절제된 공권력’의 모습이 아니라 분노와 복수의 독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