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방사능 안전, 통합관리가 시급하다
원자력, 방사능, 핵실험, 핵폭탄….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단어들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리 국민들의 방사능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졌다. 방사선 안전과 관련된 이슈도 크게 늘어났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방사능 비, 서울 노원구 아스팔트 도로의 방사능,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일본산 수산물 파동 등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방사능 농도 측정결과 등을 발표하며 안전함을 알리고 있으나, 안전하다는 믿음을 갖게 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근 정부는 방사능 안전관리와 원자력 방재업무를 수행하는 18개 부처와 기관을 묶어 ‘원자력안전 규제정책 조정회의’를 만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중대한 방사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답답한 상황에 국민은 의아해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발생한 수산물 파동에 대한 정부 대처도 마찬가지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2011년 3월에 발생했지만 일본산 수산물 금수조치는 2년6개월이 지난 올 9월에야 이뤄졌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고 발생 직후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것과 비교했을 때 우리 정부의 대처는 지나치게 신중한 느낌을 줬다. 원자력안전위원회, 해양수산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서 각각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국민의 방사선 안전성 확인 요구에 대한 일차원적 대응에 불과할 뿐이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은 결단력 있는 조치가 취해지지 못했다.

결국 방사선 관련 사건을 담당할 핵심 기구의 부재로 국민이 보기에 정부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듯’한 인상만 줬다. 그 불똥은 국내 수산물 시장에 튀었고 한동안 수산물 소비가 급감하는 사태를 빚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사고의 가능성도 있다. 원자력안전에 관한 통합 조정기구의 설립이 절실한 까닭이다.

정부는 방사선 안전에 대해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방대한 방사선 안전관리 업무를 7개 부처가 나눠 수행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부처별 상이한 기준과 절차를 갖고 각자의 목소리만 앞세운다면 혼란과 불안만 가중시킬 뿐이다. 의장 역할을 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부처간 협업구조를 만들고 베크렐(방사능의 국제 단위), 시버트(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의 양을 나타내는 국제 단위) 등 과학적 단위의 사용을 일치시키는 것에서부터 안전규제 기준의 단일화까지 조율해 나가야 한다.

조정회의는 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높이는 역할도 해야 한다. 부처별 상이한 정보공개의 범위, 내용과 방법을 통일하고, 개별부처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우선하는 개방적 자세로 관련 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부처 간 협업을 통해 만든 정책은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방사능에 대한 불신의 벽을 넘어 국민의 지지를 얻는 방법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방사능 비상상황과 관련된 국가방재체계의 실효성 있는 운영을 위해서도 조정회의의 역할은 중요하다. 방사능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중앙방사능방재대책본부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등 11개의 유관부처와 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도록 돼 있다. 따라서 비상상황 시 국가 방재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유관기관의 역할분담을 명확히 해야 하며, 국가단위 방재훈련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활발한 협업과 조정이 필요하다.

노자 도덕경에 ‘필작어세(必作於細)’란 말이 나온다. ‘세상의 큰 일은 사소한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 방사선 안전과 방재분야에서 부처 간 협업의 관행이 뿌리 내리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는 정부의 역할을 체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레나 < 이화여대 의대 교수·방사선물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