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지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조직이나 단체, 넓게는 국가를 잘 운영하기 위한 요건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도 있듯이 인재를 발굴해 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조직의 안위와 발전의 주춧돌이 된다. 기업에서도 조직의 인력 구성이 미래가치를 결정할 정도로 인재 등용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예로부터 우수한 인재를 변별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중국 당서(唐書)의 선거지(選擧志)에 따르면 당나라에서는 관리를 등용할 때 신언서판 네 가지를 두루 갖춘 사람을 으뜸으로 선발했다고 한다. 풍채와 용모, 언행, 글솜씨, 판단력을 두루 갖춰야만 백성의 모범이 되고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다는 의미다. 신언서판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조선시대에 인재 등용의 원칙이자 선비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뿌리내렸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신(身)은 용모보단 ‘올바른 몸가짐’으로, 언(言)은 화려한 언변보다는 ‘경솔하지 않고 진중한 언행’으로 강조되었다.

요즘 기업이나 단체들도 직원을 채용할 때 자기소개서와 논술, 면접 등을 통해 지원자를 여러 측면에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채용 방식이 너무 경직되고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채용하는 쪽에서 출신 학교와 성적, 자격증 등 이른바 ‘스펙’을 중시했고, 그러다보니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본인의 적성이나 의지와 상관없는 ‘스펙 쌓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최근 일부 기업들이 기존의 채용 방식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인의 의지와 역량, 인문학적 소양 등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개선하고 있다.

미래의 세계는 ‘글로벌 원-월드(Global one-world)’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사회구조도 복잡다기화될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인재를 필요로 하게 되며, 이는 인적자원이 풍부하고 개개인 역량이 뛰어난 한국에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나라는 문화예술과 스포츠 등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재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으며,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 등 국제적 리더십도 강화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인재 발굴·육성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봐야 할 때다. 국가와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창조적인 인재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되어주고 개인은 그에 걸맞은 진정한 신언서판을 갖춰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한다. 선인(先人)들의 오랜 지혜인 신언서판의 의미를 오늘 새삼 되새기게 된다.

김규복 < 생명보험협회장 gbkim@kli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