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암 투병을 딛고 공무원연금공단에 합격한 박혜림 양이 오는 15일 입사를 앞두고 서울 역삼동에 있는 회사를 미리 찾았다. 그는 “앞으로 지치고 힘든 많은 사람을 돕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2년간의 암 투병을 딛고 공무원연금공단에 합격한 박혜림 양이 오는 15일 입사를 앞두고 서울 역삼동에 있는 회사를 미리 찾았다. 그는 “앞으로 지치고 힘든 많은 사람을 돕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친하지 않은 친구들을 잡고도 면접준비를 했어요. 여러 친구에게 부탁을 하다 보니 자기소개서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

박혜림 양(안산디자인문화고 미디어과 3학년)은 한국경제신문의 고졸 취업 전문 매거진인 ‘하이틴 잡앤조이 1618’과의 인터뷰에서 “취업준비를 면접에 집중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혜림 양은 올해 공무원연금공단이 단 한 명을 뽑은 장애인 특별전형에서 100명이 넘는 지원자를 제치고 합격했다. 그는 200개의 예상 질문을 뽑은 후 후배나 친구들에게 자기소개서를 보여주고 다양한 질문을 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때는 검도를 할 정도로 건강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그는 갖은 노력 끝에 어려움을 딛고 취업에 성공했다.

○2년간의 항암치료, 그리고 복학

[JOB] 癌도 막지 못한 '긍정의 힘'…100 대 1 뚫고 입사했죠
“엉덩이 쪽이 불편해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그랬어요. 처음엔 항문병원에 갔더니 치루라는 진단을 내려서 진통제 관을 달고 학교에 다녔어요. 그런데 통원치료를 해도 부기가 가라앉지 않고 완치도 안 돼 치루에 대한 2차 수술을 받았어요.” 암을 치루로 오진해 두 번의 수술을 한 것. 당연히 나을 리가 없었다. 그제야 병원에선 조직검사를 진행했고, 큰 병원에 가서 다시 진단을 받으라고 했다.

국립암센터에서 검사를 받고도 병명을 밝혀내느라 6개월을 기다렸다. “‘횡문근육종’이라는 판정을 받았죠. 근육에 생기는 소아암의 일종이래요. 가족들이 걱정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앞이 캄캄했어요.” 이후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함께했다. 자고 나면 머리카락이 한 뭉치씩 빠지는 항암치료는 1년 넘게 이어졌고, 2년 동안 학교를 쉬면서 치료에 전념했다. 다행히 병이 호전돼 지금은 3개월에 한 번 통원치료를 받긴 하지만 거의 완치 단계다.

다시 학교에 다녀야 했지만 나이가 걱정이었다. 2학년에 복학하면 두 살 어린 동생들과 같이 다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이가 많아서 처음에는 후배들이 저를 조금 무서워했어요. 남동생이랑 동갑이라 저도 불편했고요. 그런데 적응할 수밖에 없었죠.” 나이가 많다는 생각을 버리고 친구처럼 다가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급우들도 편안하게 대해줬다.

취업을 생각한 것은 복학할 무렵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선 전문교과를 처음 배우는 게 재미있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성적도 좋아서 자연히 대학 진학을 생각했죠. 그런데 2학년 때 병원치료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고 집도 이사를 했어요. 당연히 취업을 해야겠다 생각했죠.”

○기업 워크숍·면접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

취업준비는 면접에 초점을 맞췄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모의면접은 과별로 학생을 선별해 선생님들과 전교생 앞에서 면접을 보는 식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편으로 부끄럽긴 했지만, 자신의 단점을 파악하고 자신감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기업체에서 진행하는 워크숍과 면접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했다.

자기소개서는 1~2학년 때 교과시간에 쓰고 보완하는 시간이 있어서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취업할 회사에 대한 선택기준은 ‘남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일’(봉사)이었다. 다섯 살 때 다쳐서 왼쪽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첫인상이 중요한 금융권 취업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장애가 콤플렉스는 아니었지만, 저에게 더 맞는 곳을 찾았죠. 공무원연금공단은 하는 일도 마음에 들었고, 봉사활동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어요.” 공무원연금공단 면접은 일반 면접과 프레젠테이션, 인성면접 등 4시간 동안 이어졌다. 기억에 남는 질문은 ‘할머니가 쓰러지셨는데 회사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내용. 그는 ‘할머니부터 구하겠습니다’라고 했고, 면접관은 ‘그것이 정답’이라고 했다. 인성을 먼저 파악한 것이다. 머리 굴리다 ‘회사부터’라고 답했더라면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합격자 발표 땐 전교생이 환호

합격자 발표(4월8일)를 앞두고선 본인보다 후배와 선생님들이 더 조마조마해했다. “인터넷을 통해 합격자 발표를 본 후배들이 탄성을 질렀어요. 제가 아팠을 때 모금운동을 해주셨던 2학년 담임선생님 두 분도 눈물을 흘리셨어요.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었죠.”

혜림 양은 오는 15일이면 공무원연금공단 직원이 된다. 6개월간의 인턴기간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몇 달 전 그의 희망은 취업이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취업 노하우도 전했다. “취업, 진학 하나만 정해도 붙을까 말까 한데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많아요. 결정과 준비를 빨리해서 모의면접 시간을 많이 갖는 게 좋을 듯해요. 학교에서 하는 모든 면접 관련 프로그램이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이학명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mrm9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