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속철 건설ㆍ운영 통합해야
대표적인 운송수단인 KTX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걸핏하면 멈춰섰던 KTX를 철도안전위원회가 조사한 결과 차량의 설계와 제작,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발표가 연휴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큰 일 없이 추석 연휴는 넘겼지만,언제 또다시 KTX 고장소식이 들려올까 우려된다. 위원회가 권고한 대로 관계기관과 관련업체는 예산 및 인력확보와 리콜 등 책임있는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고속철도 안전사고를 제로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 개선과 근본적인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선 신칸센 47년, TGV 30년에 비해 7년에 불과한 KTX 운영기간을 감안할 때 선진국 수준으로 기술력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사실 제작사는 한진중공업과 대우중공업이 구조조정 중에 합친 회사로 합병 과정에서 기술유출이 많았다. 더구나 독자기술 개발과정에서 외국인 선진기술자를 배제함으로써 '우물안 기술'이 되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있다. 제작사는 이제라도 설계나 제작상에 발생한 결함을 하나하나 개선함으로써 기술력 무결점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고속철의 독자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철저히 기술도입 3단계 전략에 의해 추진된 원자력발전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1980년 수립된 원전건설 기술자립계획에 따라 1호기는 벡텔 등 외국의 선진기업 주도로 건설하되 한국 기술자는 훈련을 받았다. 2단계는 외국과 한국 회사가 반반씩 수행하고, 3단계는 한국 기업이 주도하면서 외국 전문가들이 지원하는 형태로 한국형 원자력 기술을 확보하게 됐으며 그 결과 중동으로 기술수출까지 가능하게 됐다.

고속철의 경우 지금이라도 공공부문과 민간기업들이 혼연일체가 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선진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원전식 기술도입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KTX의 안전문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건설(철도시설공단)과 운영(코레일)으로 '상하 분리'된 구조에서 기인했다는 분석도 있다.

상하 분리는 당초 독점을 막고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논리로 정부가 강행했는데, '통합과 융합'이라는 시대흐름에는 맞지 않다. 토지주택공사처럼 합치고 효율화하는 게 맞는 것은 아닌지, 정부가 한번쯤 평가할 때도 됐다. 철도건설과정에서 운영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설계부터 운영, 유지보수 까지 일관된 기술개발과 시스템 표준화가 곤란해지고, 불필요한 업무 중복과 예기치 않은 관리업무 공백을 초래하고, 안전에 대한 책임전가가 나타난다면, 이번 기회에 과감히 통합하는 혁신도 생각해볼 만하다.

고속철 안전문제는 노사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징계퇴직자 이외에 구조조정이 한 명도 없다는 사측에 대해 노조는 파면 등 부당한 해고가 심각하다며 맞서고 있다.

노조는 심지어 공사의 안전정책에 대해서도 거부지침을 하달하고 경영참여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국민의 생명이 걸린 고속철도에 근무하는 직원이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번 기회에 철도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격상시키는 데 노사가 대화하고 타협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프로젝트 관리 관점에서 볼 때 고속철 사업은 사업비와 사업일정이 엄청나게 차질 난 대표적인 국책사업 실패 사례이다. 사업의 기획,설계,발주,시공,열차제작,운영 및 유지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시공이나 제작의 문제보다도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기획,기술자립전략,설계 엔지니어링 등의 문제가 컸었다. 고속철 안전사례를 통해 다시 한번 소프트웨어의 중요성과 전략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