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을 위한 소액 무담보 대출인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보도다. 그라민 은행의 금리가 고리대금 수준으로 높아진데다 가혹한 추심으로 대출 받은 이들이 자살하면서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말았다는 얘기다. 그라민 은행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는 이미 불명예 퇴진당한 상황이고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는 규제 법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서민들을 위해 소액을 저리무담보로 대출해 준다는 그라민 은행도 신용이 낮을수록 금리가 높아진다는 금융의 본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전통 금융인 계(契)처럼 작은 규모일 때는 그럭저럭 굴러가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제도화되면서 비극은 잉태되고 말았다. 특히 설립자인 유누스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난 다음에는 여기저기서 벤치마킹하겠다고 나서면서 사고 위험은 더 커지고 말았다. 결국 빚을 갚지 못한 대출자들이 늘어나자 금리는 자꾸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됐고, 대출 재원은 한정돼 있으니 어떻게든 돌려받으려는 추심 또한 기혹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유누스 총재에게 서울평화상을 안기며 아이디어를 본받자고 떠들었던 것이 최근의 일이다. 미소금융 햇살론 등 금리 특혜를 주는 서민금융은 다 그렇게 탄생했다. 사정이 급해 쓰는 것이지 상환능력이 없는 서민들이 갚기가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햇살론의 대부분이 생활자금이고 보면 신용불량자 양산은 시간문제다. 언제까지 대출자금을 강제로 갹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벌써 햇살론 대출이 눈에 띄게 줄었고 미소금융도 뜸해지는 등 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친서민을 내세운 금융이 서민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