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강마에,'하얀거탑'의 야심 가득한 외과의사 장준혁.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킨 캐릭터를 창조했던 김명민(39)이 설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감독 김석윤,27일 개봉)에서 유머러스한 탐정 역을 해냈다.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옮긴 이 영화에서 그는 정조의 밀명을 받아 공납비리를 저지른 관료들의 음모를 파헤친다. 21일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이 작품에 출연할 당시 제가 읽은 시나리오 중 최고였습니다. 명탐정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를 연상시키는,탐정 콤비의 활약을 다룬 한국 영화는 없었거든요. '인디애나 존스'와 '007'처럼 통쾌감을 주는 시리즈물로 만들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

그는 탐정 영화에서는 캐릭터가 가장 중요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탐정물이란 주인공이 명석한 두뇌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재미를 추구합니다. 소재는 널려 있으니까,어떤 캐릭터로 접근하느냐가 관건이죠.'콜롬보' 같은 형사는 세계인의 뇌리에 뚜렷이 남아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기억할 만한 탐정 캐릭터가 없습니다. 저는 '조선 최초의 탐정이라면 이랬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습니다. "

그가 해낸 명탐정은 진지하거나 심각하지 않다. 오히려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낼 만큼 코믹하다. 끝 부분이 위로 살짝 올라간 콧수염을 붙인 채 허술하고 비겁하게 행동하기 일쑤다.

"결과적으로 코믹한 인물이 됐지만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닙니다. 웃기려고 하면 과해지기 십상이죠.저는 정조의 밀사로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술하게 보이려는 인물이라고 설정했습니다. 그걸 능청스럽고 뻔뻔하며 진지하지 않고 철없는 허당으로 표현한 거지요. "

극중에서 그는 때때로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는다. 아이디어가 번뜩거리는 사람들은 으레 말이 빠르다고 봤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이번 배역처럼 시나리오의 본질 속에 잘 녹아있어야 합니다. 이야기 본질을 후벼파야 합니다. "

그는 늘 자신이 맡은 캐릭터는 어디엔가 살아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캐릭터를 대변하는 게 배우인 자신의 임무다. 그래서 연기에 임할 때 자신을 지우고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려고 노력한다.

"새 캐릭터가 겪는 고통과 기쁨을 그대로 전달하려면 다른 짓 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래서 새 배역을 맡으면 서너 달의 촬영 기간 중에는 그에게 푹 빠져 삽니다. 이번처럼 사극을 촬영할 때면 생리적인 고통도 함께 겪어야 합니다. "

사극은 문명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오지에서 촬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간 충북 단양과 경기도 파주 등의 산속에서 찍느라 화장실과 수도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남자 스태프들은 간이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삽을 들고 나서야 했다고 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