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

그 사람이 금융 시장의 탐욕을 비난하는 것은 정말 뜻밖이다.다보스에서,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은자(隱者)가 세상을 내려보는 듯한 거만한 자세로 금융을 조롱한 소로스 말이다. "금융 위기는 달러 신용 팽창이 불러온 재앙이며 시장이 모든 것을 정상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책임"이라는 사자후에 이르면 귀를 씻고 듣게 된다.파운드화를 공격하면서 영국을 난도질했던 자가 누구였던지.동남아를 노략질하고,태평양을 북상하며 대만과 홍콩을 진창으로 만들고,한국은 반공 국가라서 봐 준다며 허풍을 쳐 대던 상어떼의 두목 말이다.외환 투기야말로 모든 것을 정상화한다는 논리의 극단적 형태가 바로 그의 종교였을 텐데 이제 시장을 비난하기로 마음을 바꾸었으니 개종은 물론 자유다.

좌파 정부 10년 동안 가장 잘못된 것이 시중 은행을 모조리 외국에 내다판 일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정권이 바뀌자마자 또 금융 코리아니 금융 허브 같은 슬로건을 들고 뛰는 장사치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펀드 투자가 밥먹여 준다는 주장도 그렇고 자동차 수출보다 해외 주식 투자로 국부를 쌓자는 주장에 이르면 골수의 깊은 병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은 물론 장사치들의 수법이다.그러나 당국까지 가세한다면 묵인할 수 없다.미국을 금융 산업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잊는 것은 미국 농업의 막강함이며 미국 제조업의 다락 같은 생산성이다.세계 연구개발(R&D) 상위 기업이며 브랜드 100대 기업이며 제조업 톱 50 따위에서 미국 제조기업의 명단을 한 번이라도 확인해 본 사람은 금융은 결과일 뿐 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금세 알게 될 것이지만 제조업을 이리도 천대하는 한국에서 누가 그런 시류에 없는 짓을 할 것인가.

한국투자공사(KIC)가 메릴린치에 2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을 놓고 금융 코리아의 첫발 따위로 허풍을 친다면 착각은 자유다. 밭의 작물을 한뼘이나 뽑아 놓고 잘 키웠노라고 우쭐대는 어리석은 농부 꼴이다.어떤 근거로 2조원에 육박하는 거금을 투자하기로 했는지 도통 알려진 것도 없다.재경부의 누가 어떤 경과를 거쳐 KIC로 하여금 20억달러를 미국 증권사 주식에 투자하도록 지시했는지도 궁금하다. 인수위가 동의한 것인지 국회는 알고나 있는 것인지도 오리무중이다.인수위의 누가 어떤 권한으로 이를 묵인했는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KIC가 제멋대로 자산보다 큰 투자를 감행할 까닭이 없다고 본다면 나랏돈을 제멋대로 주식 투자에 동원하는 재경부의 버릇은 고칠 길이 없다. 경제는 또박또박 전진하는 것이지 한탕주의로 되는 것이 아니다.IB도 금융도 다를 것이 없다.제조업이 넘쳐야 금융과 증권이 살아나는 것이다.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경영권을 무장해제해 놓은 다음 외국 투기꾼들의 경영권 협박을 밑천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것도 주가지수 2000이면 끝이다.투기꾼들이 빠져나간 지금의 증권시장이 말해 주는 그대로다.기업이 생산한 것 이상으로 주가가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그것이 가능하다면 오로지 뒷사람의 돈이 앞사람의 돈을 채워 주는 투기 자금의 피라미드가 세워질 때뿐이다.그마저도 지난 수년간은 소로스의 고백마따나 신용 팽창 덕분이다.

주가가 떨어지자 또 연기금을 들먹이는 관료들은 과연 제정신인지.내 노후 자금을 왜 제멋대로 투기꾼 도망 가는 데 보태 주나.투기꾼들의 놀이터로 만들어 놓은 증권 제도와 법을,그리고 월권을 일삼는 관료들을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