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경제교육연구소장.논설위원 >

"하나회가 그렇게 막강한 줄 알았더라면 결코 해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은 장군들의 목을 단칼에 쳐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우스개의 하나지만 '주인-대리인' 문제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YS는 직관 하나는 타고 났다는 말도 된다.

물론 하나회는 구시대의 색바랜 한장의 사진일 뿐이다.

그러나 지연 학연이 없다면 다른 무엇이라도 찾아내 끊임없이 이너 서클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사회다.

김재록 사건으로 불거진 소위 이헌재 사단론 역시 그 실체에 대한 다양한 주의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런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원래 허명(虛名)이 더욱 강력한 것이고 근거없는 풍문의 전파력이 더 한층 빠르다. 이헌재 본인이 동의를 하든 않든 간에 '이헌재 사단'이라는 이름은 강력한 결사체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누가 누구를 이용했건,누가 누구의 이름을 팔고 다녔건 그것은 이름을 빌려준 자 혹은 이름을 도용당한 자의 암묵적 동의라고 세상 사람들은 지레 짐작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치열한 감투 싸움과 피말리는 거래들이 잇달아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이른다면 '무슨무슨 사단'은 어엿한 실체로 둔갑하는 것이고….

지주(地主)가 시원찮으면 마름이 큰소리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권력이 허약하면 관료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다를 것이 없다.

아무도 그들을 선거로 뽑아 책임을 맡긴 적이 없건만 은행장과 기관장은 돌아가면서 떠맡고, 남는 장사는 돌아가면서 일구고, 없는 조직도 만들어 내고, 법도 고치고, 해석도 제멋대로 하는…, 그리고 기꺼이 30년짜리 폭탄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금융을 농단해왔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들이다.

바로 그 중심에 이헌재 전 부총리가 있었다는 소위 이헌재 사단론은 과연 어디까지 진실에 부합할 것인가.

돌아보면 바로 그 때문에 한때 이헌재 펀드라는 돌출적인 아이디어가 나왔는가 싶기도 하고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나면 그가 국민금융지주의 회장으로 컴백할 것이라는 악성 루머가 증권가에 나돌기도 했던 모양이다.

만일 풍문처럼 된다면 금융은 말그대로 특정 모피아 이너 서클의 천하통일이 될 터였다.

호랑이 없는 굴이 어쩐다는 식으로 주인 없는 금융산업은 곧장 외국인과 마름(관료)들의 잔치판이 되고 말았으니 이런 금융을 놓고 개방이니 국수주의 따위를 갑론을박하는 것도 낯 뜨거운 일이다.

불행히도 권력이 무능할수록 대리인들이 임자 노릇을 하는 것은 달라진 것이 없고 갈수록 큰 정부를 외쳐대는 이 정부는 그 점에서는 타의 추종이 불가다.

더구나 관료로 하여금 거꾸로 언론을 통제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니 감시받을 자에게 감시자의 완장을 채워주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요 부조리극이다.

그러니 지금은 정부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아전과 마름들의 전성 시대다.

외환위기 이후 그토록 부산을 떨었던 소위 지배구조 개혁론의 결과는 이미 우려됐던 바 그대로다.

금산 분리와 재벌규제와 기업가에 대한 그 많은 공격적 캠페인들이 노린 것이 결국은 사적 소유권에 대한 부정이며 그것의 파생적 결과다.

금융산업은 결과적으로 주인없는 노다지가 되고 대리인들의 잔칫상이 되고 말았다.

금산법 논란 따위도 그런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좌파들이 어리석게도 '주인 없는 시장경제'라는 환상을 버리지 못하는 동안 제2, 제3의 이헌재 사단은 언제나 생겨나게 마련이다.

얼치기 좌파가 우파 기회주의자들을 앞장세워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오늘의 금융산업이다.

그들은 대리인을 부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전과 마름들은 어느새 알토란 같은 사익(私益)의 문전옥답을 일구어 내는 것이다.

외환은행의 전직 경영진들과 관련자들은 두툼한 보너스와 함께 청와대와 정부 혹은 산하기관에서 지금도 잘들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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