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아마 2년도 더 된 일인 것 같다. "황우석 교수에 문제가 많다. 날조라는 말도 있다"는 말을 기자가 처음 들었던 것이…. 문제의 2005년 논문이 발표되기 훨씬 이전의 일이었으니 지금에 와서야 "그때라도…"라며 아쉬움을 갖게 된다. 과학에 문외한인 기자로서는 학계가 먼저 나서주길,그리고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밖에 도리가 없기도 했다. 이미 과학계의 권력이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진실을 밝혀보자고 나설 인사도 많지 않았다. 내분이 일어나고 배신자의 비수가 날아들고서야 진실이 드러났다. IMF 외환위기 이후 그 얼토당토않던 '신지식인' 캠페인에서부터, 솟아오르던 벤처 거품과, 정치에 이어 경제와 과학 분야에서도 인적 청산을 열망하던 김대중 정부와, 탈이념 분야에서 그토록 성공의 증거물을 찾으려 했던 노무현 정부가 희대의 거짓에 이카루스의 날개를 더 크게 더 크게 달아준 결과였다. 어찌됐건 독자들에게는 죄송스럽게 됐다. 한경은 불과 두어달 전에도 황우석 교수가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를 1면에 대문짝만 하게 내보냈다. 면구스러워 얼굴을 들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서울대도 정부도 이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갑자기 진실의 편인 듯 나서는 모습들도 아릅답게 볼 수만은 없다. "거짓은 날아서 오며 그 뒤를 쫓아 진실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온다"고 말한 자는 조너선 스위프트였다. 뒤뚱대며 진행돼온 황우석 사건의 전말을 보면서 더욱 이 말에 무릎을 치게 된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동안은 언제나 기만이 판치는 것이지만 거짓은 사람들이 믿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주기 때문에 더욱 강력해지는 모양이다. 사실 과학 분야에서의 거짓과 조작은 허다한 사례를 이미 축적하고 있다. 가까이는 일본 후지무라 신이치의 구석기 유물 날조에서부터 영국인 우드워드가 만들어낸 필트다운 미싱링크 조작 사건을 거쳐 수도 없는 연금술사들의 기만과 거짓에까지 거슬러가면 차라리 진실이 귀하다 할 정도였다. 거짓에는 마력이 있다고 할 밖에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바로 그 때문에 과학의 언덕에서 정치의 시정으로 내려서면 거짓은 차라리 일상사라고 하는 것이 옳다. 아름다운 단어로 허위의 성(城)을 쌓아 올리는 것만으로도 줄기세포를 능가하는 꿈을 정치가들은 대중에게 심어준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정부로부터는 참된 증언을 기대할 수도 없다. "정치적 거짓말은 사흘 동안만 국민의 신뢰를 받으면 정부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격언은 실은 메디치가 했던 말이라고 아이작 디즈레일리는 썼었다. 디즈레일리는 정부 정책이 그럴싸할수록 그것의 대부분은 당리당략일 뿐이라고도 했다. 참여 정부의 그많은 아름다운 정책과 기획들은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 것인가. 권력을 사들이는 매표(買票)의 기만극과 국가경영의 이상론(理想論)은 종이 한장의 차이일 뿐이다. 누가 추한 현실을 드러내 보여줄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더구나 참여정부는 악마의 증언자(devil's advocate)로도 불리는 언론을 '악의적'이라고 몰아붙이는 특이한 재주를 갖고 있다. 누가 진정 줄기세포를 바꿔치기 하고 있는 것인지. "거짓말에는 순수한 거짓말, 지독한 거짓말, 그리고 통계가 있다"고 말한 자는 마크 트웨인이었다. 지난 2년여 동안 침체상을 거듭하던 경기가 다소나마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 여기서 만큼은 틀려주기를 바랄 뿐이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