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 미쳐야 미친다

    세월이 어느덧 흘러 목회를 시작한지 십 수 년이 흘렀다. 나이도 예순이 넘었다. 나의 인생과 목회를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런 생각 중 하나는, 좀 아쉽고 약간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미친 듯이 몰입하는 열정이 부족했던 점이다. 좀 더 열정을 가지고 인생을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열정은 사람에게만 붙일 수 있는 단어이다.역사적으로 살았던 인물 중 그런 열정을 가지고 산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몇 년 전 교회에서 다녀왔었다. 그곳은 증평이다. 우리교회 성도의 별장이 있어 함께 예배를 드리고 큰 저수지 주변을 돌아보는 둘레 길도 교우들과 함께 한 바퀴 돌았다. 곳곳에 한시(漢詩)와 사람조각물을 보았다. 안내문을 읽다가 ‘아, 이 사람의 고향이 여기구나’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 사람은 백곡 김득신(1604-1684)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우선 그의 묘비명을 보자.“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 있을 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그를 알게 된 것은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특히 그의 <독수기>를 보고 놀랐다. 그는 한 인간의 성실과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는 독서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 번 이하로 읽은 것은 아예 숫자에 들어가지도 않았다.“읽은 횟수가 만 번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독수기’에는 싣지 않았다. 만약 뒤의 자손이 내 독수기를 보게 되면,

  • 다산이 아들에게 준 두 글자

    사람마다 습관, 버릇이 있다. 그 버릇도 좋은 버릇이 있는가 하면 고쳐야 하는데 좀처럼 잘 안 되는 버릇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종류의 버릇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데 잘 미루는 것이다. 일테면 그때그때 시기를 맞추어 잘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꼭 코앞에 가서야 하는 것이다. 이런 습관은 오래되었다. 소시 적 학교 다닐 때 시험공부도 벼락치기. 방학 때 일기 숙제도 학교가기 전 한꺼번에 쓴다. 그런 버릇은 성인이 되어서도 잘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때로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제발 미루지 말고 하라고’. 가끔은 어떤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받는다. 그럴 경우에도 꼭 날짜를 간신히 지키거나, 턱거리로 보내기도 한다. 때로는 글을 보내겠다고 하고 미적거리다가 약속을 어길 때도 있다. 이런 좋지 않은 습관을 고쳐야 하는데, 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앗. 나에게 하는 말이다’하는 글을 읽었다. 그의 글을 보자. “나는 너희들에게 전원을 물려줄 수 있을 정도의 벼슬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활을 넉넉하게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두 글자를 너희들에게 주노니, 너희들은 하찮게 생각하지 마라. 한 글자는 ‘부지런할 근(勤)’자요, 또 한 글자는 ‘검소할 검(儉)’자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논밭보다 훨씬 나아서 평생토록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근’(勤)이란 무엇인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까지 늦추지 마라. 맑은 날 해야 할 일을 미적거리다 비 오는 날 하지 마라. 비 오는 날 해야 할 일을 꾸물거리다 맑은 날 하지 마라.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을 하고, 어린이는 왔다

  • 이런 제자 하나 얻는다면? 치원(巵園) 황상(黃裳)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명석한 두뇌와 근면성 어느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할까? 이에 대한 생각은 각각 다를 것이다. 우리는 흔히 토끼와 거북이라는 이솝 우화를 안다. 거북이는 부지런함과 근면성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거북이가 부지런함과 근면을 나타낸다면 조선시대 인물 중 그런 사람은 누구일까? 여러 사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인물전을 보다가 “아, 맞다. 이사람”하고 생각을 했던 인물이 있다. 그의 나이 75세가 되어 자신의 일생을...

  • 성호(星湖) 선생의 여섯 가지 후회(六悔)

    18세기 조선의 선비 가운데 큰 축을 이루는 인물은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연암 박지원(1737~1805)이다. 이들은 사상적 스승이 있었다. 다산에게는 혜환 이용휴(1708~1782)와 성호 이익(1681~1763)이다. 이 두 사람은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재야 문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은 과거급제 해 관직을 받아 내직이든, 외직이든 나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여러 ...

  • 정약용이 말하는 복, 청복(淸福)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들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들 중에 하나는 환갑이 되거나, 칠순이 되었을 때 ,참 잘 살았다고 진심어린 축하를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 축하를 해 주는 사람이 그래도 누구나 인정해 줄만한 사람이라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전에 필자가 불로그를 만들고 포스팅을 하는데, 고향이 단양이라 옛 선비들의 글 중에 단양에 관한 글이 있으면 모아 보겠다고 해서, 수 십 편의 글을 모아 블로그에 올렸었다. 그러던 중, 다산 정약용이 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