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투자에 있어 가장 힘든 일이 있다면 아마도 점유자를 명도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점유자가 없는 경우의 명도 과정은 더 어렵고 복잡할 수 있다.
물론 점유자가 있는 경우에도 그 점유자가 채무자(소유자)인지 임차인인지, 악의의 점유자인지 선의의 점유자인지 및 보증금 배당의 정도에 따라 명도 내지 명도 협상의 수위가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나 점유자라는 명도대상이 있기 때문에 협상의 기술에 따라 아니면 강제집행 절차에 따라 명도하는데 다소의 시간차는 있어도 그리 큰 부담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명도대상이 불명확하거나 특정되어 있지 않는 경우다.
명도대상이 불명확하거나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점유는 하고 있으되 점유자가 누군지 모르거나 점유자의 행방이 묘연한 경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도명령을 통한 강제집행절차에 있어서 강제집행에 앞서 인도명령 결정문에 대한 송달증명이 필요한데 명도대상이 불명확하거나 특정되지 않으면 이 송달증명을 받을 수 없게 되고 결국 강제집행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송달증명이 안 되는 경우 공시송달이라는 절차를 거친 후에야 강제집행을 하게 되지만 공시송달을 거쳤다고 해서 강제집행이 순리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사례를 한번 들어보자.
'K'씨가 여의도에 있는 M오피스텔 한 채를 낙찰받은 것은 지난 7월 중순으로 임대차조사서상 'KM'이라는 회사가 점유하고 있는 물건이다. 'K'씨는 매각허가가 확정되고 대금납부기한이 정해지자마자 8월 초에 곧장 대금을 납부하고 점유자(임차인)를 수차례 만나려 했으나 문은 굳게 잠겨 있고 좀처럼 점유자를 만날 수가 없었다.
입찰 전에 관리사무실이나 M오피스텔을 주로 중개하고 있는 중개사무소 직원으로부터 해당 오피스텔 내부에 사무집기는 남아 있으나, 오래전부터 점유자가 거주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얘길 들어왔던 터다.
점유자를 만나 명도협의를 해서 모양 좋게 오피스텔을 인수받으려 했던 낙찰자 ‘K'씨는 명도협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도명령을 신청해 인도명령결정문까지 받았다. 인도명령 신청서 작성 시 인도명령 대상자(채무자)로 대법원 경매정보에 있는 임대차조사서상의 'KM'회사를 기재했다. 문제는 송달증명이었다.
오피스텔 내부에 점유자가 아무도 없으니 송달증명을 받을 리 만무했다. 그간에도 수차례 오피스텔을 방문해 명도협의를 하려고 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공시송달 절차까지 밟았다.
2주간의 공시송달 기간이 지난 후 강제집행 신청을 통해 강제집행 날짜를 지정받았다. 그때가 낙찰받은 때로부터 꼬박 4개월이 지난 11월 중순이었다.
강제집행 당일 이삿짐을 실을 차량이 대기하고 있고, 법원에서 나온 집행관을 비롯해 오피스텔 내부 집기를 드러낼 인부들이 오피스텔 복도에 모여들었다. 출입문 열쇠를 인부들이 해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그동안 집행관은 강제집행 장소에 나온 증인 2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드디어 오피스텔 출입문이 개방되고 집행관, 인부들이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일부는 옮길 목록을 작성하고 일부는 사진을 찍었다. 'K'씨는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K'씨가 인도명령 신청 시 채무자(인도명령 대상자)로 명기했던 임차인 'KM'이라는 회사가 당해 오피스텔을 점유하고 있다는 물증이 나와야 하는데 내부에 있는 서류나 우편물, 법인 통장을 아무리 살피고 또 살펴도 그런 물증이 나오지 않았다.
책상 서랍이고, 휴지통이고, 책꽂이 그 어느 곳을 찾고 뒤져봐도 'KM'이 인도명령 신청서상의 점유자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KM' 대신 그간 민간경매정보나 대법원 경매정보의 임대차조사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H'라는 법인명이 새로이 등장했다.
관리사무실에서의 관리비 청구서, 국민연금납부고지서, 보관된 법인통장, 우편물, 기타 여러 회사관련 서류들을 보아도 최근까지의 점유자는 'KM'이라는 회사가 아니라 'H'라는 회사가 분명했다.
'KM'이라는 회사의 이름이 하나라도 드러나 있으면 집행이 가능할 텐데 그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집행관도 난감해 했다. 'K'씨는 다소 불안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동안 물증을 찾으려했던 집행관이 입을 열더니 집행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최근까지 점유한 것으로 새롭게 드러난 'H'라는 회사를 채무자로 하고 다시 인도명령을 신청하라고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강제집행을 못한 것도 억울한 데 이사차량 대기, 기타 등등 비용으로 30만원이 현장에서 청구됐다. 인도명령을 다시 신청해서 집행하기까지 또 2달 이상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깟 조그마한 오피스텔 하나 명도하는 데 꼬박 6개월이 걸릴 참이다.
뭐가 문제였을까? 이미 강제집행 과정에서 다 나왔듯 최종 점유자 확인을 게을리 한 탓이다. 경매정보에 나와 있는 임차인이 최종 점유자인 줄로만 알고 인도명령 채무자를 그대로 기재했던 것이 문제다. 물론 'K' 입장으로서는 사전에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겠지만 이는 형사범죄의 소지가 있으므로 마뜩치 않다.
그렇다고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까지 점유하고 있었다면 관리사무실에 가서 당해 오피스텔 관리비를 누구를 대상으로 청구하고 있었는지 또는 가장 최근까지 누가 관리비를 납부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또 내선 전화 사용료에 대한 우편물 청구서가 누구 이름으로 되어 있는지 등을 살펴보면 될 일이다.
확인된 사실상의 점유자와 신고된 임차인인 점유자가 일치되면 인도명령 채무자를 그대로 하면 되지만 그 둘이 다르다면 관리사무실이나 각종 우편물을 통해 최종 점유한 것으로 확인된 사실상의 점유자를 인도명령 채무자로 특정하여 인도명령을 신청해야 한다. 만약 점유자가 수시로 바뀔 가능성이 있으면 점유이전금지 가처분 신청을 선행한 후 인도명령 신청을 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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