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가 세든 집에서 생활하면서 못을 수십 개를 박아 벽을 훼손했다면 임대차계약을 종료함에 있어 집주인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을까? 필자가 얼마 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문을 한 내용이다.

임대차계약에서 이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합의를 담고 있다면 계약 내용에 따라 해결할 수 있지만, 우리의 계약 현실에서는 이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거나 ‘계약 종료시 원상회복한다’는 정도의 지극히 간단한 내용만이 기재되고 있어 구체적인 분쟁을 해결하기에는 미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이러한 사례는 매우 빈번히 발생함에 불구하고 관련 판례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대부분 1백만 원 이하의 소액사건이어서 재판에 이르기 전 임대차 종료 과정에서 우격다짐의 형식으로라도 억지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재판까지 가더라도 판결 선고를 위해서는 원상복구 비용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감정이 필요한 관계로, 판결이 아닌 재판상 조정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건물을 빌려 사용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건물 마모나 사용은 용인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생활을 위한 경미한 정도의 못질은 통상 허용된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는 과도한 못질로 인한 건물 훼손에 대해서는 세입자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데, 판단 기준은 결국 상식이나 사회통념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건물 훼손이 과한지 여부는 임대차의 규모나 계약 내용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명확한 기준 제시가 어렵게 된다.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위와 같은 사항을 계약서에 명시적인 문구로 반영할 필요성이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계약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간단한 주택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에도 수십 개 이상의 합의(계약) 문구가 사용되고 있는데, 방송에서 다루었던 못질 문제와 관련하여 시중에서 사용되는 여러 영문 계약서를 입수해서 살펴본 결과, 아래와 같이 놀라울 정도로 자세한 합의 문구가 사용되고 있었다.



예시1
ALTERATIONS
: RESIDENT shall not paint, wallpaper, alter, change or install locks, install antenna or other equipment, screws, fastening devices, large nails, or adhesive materials, place signs or other exhibits, on or in any portion of the premises without the written consent of the OWNER except as may be provided by law.

(목적물의) 변경: 입주자는 법에 보장된 바를 제외하고는, 소유주의 서면 동의 없이 목적물 어느 부분에도 페인트칠, 도배, 개조, 잠금장치 변경 또는 설치, 안테나 기타 장비•나사•고정 장치•대못 또는 접착물질•간판 기타 전시물의 설치를 해서는 안 된다.

예시2
HANGING
PICTURES; NAILS AND SCREWS: Lessee may hang pictures or other wall hangings, but nails and fasteners must be as small and nondestructive as possible. Ceiling hangings are not permitted. Lessee shall not use toggle bolts or similar fasteners which cause large holes. Lessee is responsible for filling and patching all holes. If a filled or patched hole is conspicuous, the lessee shall be responsible for lessor's cost of repairing and repainting the walls and, if applicable, ceilings.

그림 걸기 및 못과 나사 사용: 임차인은 그림 기타 벽걸이 장식을 설치할 수 있으나, 못과 고정 장치는 가능한 한 작고 목적물에 손상을 덜 주는 것으로 사용해야 한다. 천장에 거는 설치물은 허용되지 않는다. 임차인은 거대한 구멍을 내는 토글볼트나 이와 유사한 고정 장치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임차인은 모든 구멍을 메우고 덧댈 책임이 있다. 구멍을 메우거나 덧댄 흔적이 눈에 잘 띠는 경우, 임대인이 벽(경우에 따라 천장 포함)을 수리하고 새로 페인트칠하는 데 드는 비용은 임차인이 부담한다.



분쟁 발생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계약에 소홀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경시 풍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당사자들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계약 체결 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상-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 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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