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대란 누가 키웠나] '순환단전' 두려워말자…최후의 안전판
2011년 9월15일 정부가 단행한 ‘순환단전’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당시 인위적인 단전에 따라 656만가구의 전기가 끊겼고 554곳의 중소업체가 공장가동을 멈춰야 했다. 은행 417개 지점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전국 교통신호등 2800여개도 먹통이 됐다. 병원 수술실의 전기가 나가기도 했다. 피해가구의 손해배상 청구금액만 14조원에 달했다. 뜻밖의 불편을 겪어야 했던 국민들의 공분은 주무 장관이던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과 실무 담당자를 경질시켰다.

이 같은 순환단전은 ‘전력대란’ ‘대정전’ ‘블랙아웃’이라는 공포스런 대명사로 지칭됐다. 하지만 이는 틀린 표현이다. 순환단전은 ‘블랙아웃(대정전)’이라는 대재앙을 막기 위해 국민들이 감수해야 할 불가피한 조치다. 블랙아웃의 양상과 피해 규모는 순환단전과 비교도 안될 정도의 광폭성을 갖고 있다.

한국은 9·15 순환단전 이후 단전 1순위를 주택·아파트와 일반 상가, 2순위는 다중 이용시설과 산업공단, 3순위를 양식장 등 농어업·축산업 정전 민감고객으로 정해놓고 있다. 1시간 단전 후 다시 전기를 넣어주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쉽게 말해 순환단전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지만 블랙아웃은 통제할 수 없는 사태”라고 말한다. “순환단전은 선진국에서도 취하는 조치이며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재앙 수준인 블랙아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단지 순환단전을 취했다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당국자와 실무자를 징계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순환단전 조치 때문에 담당자들을 제재하면 후임자가 어떻게 순환단전을 결정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징계 불안감에 떨다가 순환단전을 해야 할 중요한 시점을 놓칠 경우 그게 바로 블랙아웃으로 가는 길이라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순환단전 가능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며 “장관이 날아갔다는 이유로 순환단전을 금기시하다간 정말 큰 일이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

■ 순환단전

최대 전력수요를 충족하고 남은 예비전력이 100만㎾를 5분 이상 밑돌 때 주택·상가, 공장 등 순서에 따라 전력 공급을 한시적으로 끊는 조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 아래 한국전력이 시행한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