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3당-정부 모두 출범엔 긍정적…내일 원내대표 회동서 본격 논의
순항 여부엔 부정적 전망 우세…정부 핵심과제·인사권 놓고 충돌할듯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이후 빚어진 국정 공백 해소를 위해 정치권이 여·야·정 협의체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임시 비상체제'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는 당면한 대내외 현안에 대응하고 주요 국가 과제를 실행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여야 3당 사이에 형성됐기 때문이다.

황 권한대행 측에서도 여·야·정 협의체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조만간 협의체 출범이 가시화할 전망이다.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물론, 새누리당도 협의체를 통한 국정 운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이 권한 정지된 이상 집권당이란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여당과 당정 협의는 불가하다"며 "이미 제안한 국회·정부 정책협의체를 통해 국정 공백을 막아야 하고, 상시 국정보고 체계를 만들어 경제와 민생, 안보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당 안철수 대표가 제안한 여·야·정 국정협의체에 대해 국민이 비교적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원내대표 간 회담을 통해 논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국회가 국정위기 수습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만큼 협의체는 바람직한 구상"이라며 "여야가 수시로 모여서 지혜를 모으고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오는 12일 오후 회동을 통해 협의체 구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은 정치권이 여·야·정 협의체를 통해 국정 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아래 현재 내부적으로 협의체 구성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협의체가 발족하는 데까지는 큰 장애물이 없어 보여 20대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된 뒤에 정부와 여야 3당이 시도했다가 사실상 실패한 '협치 실험'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실제 국정운영에서 협의체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삐걱거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여야의 시각이 판이하고 인사권에 대한 견해도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계획) 배치, 국정교과서 개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등의 결정을 내린 바 있지만 이는 야 3당이 모두 반대하는 이슈들이다.

실제로 야 3당은 탄핵 직후부터 이런 정부의 주요 결정을 모두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이날도 논평에서 "국정논란으로 잘못된 국정교과서 등 현안을 바로잡겠다"면서 "사드, 한·일 위안부 협상 등 국민이 반대하고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정부가 독선적으로 무리하게 추진한 정책들이 더는 추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 원내대표 역시 "국정교과서도 문제고,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이 엄청난 것도 문제"라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이미 비준이 끝나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위안부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어 패키지로도 (재검토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의 평소 이념 성향이나 업무 스타일 등으로 볼 때 현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협의체가 운영되더라도 곳곳에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난 9일 직무정지 직전 황 권한대행을 비롯한 국무위원, 청와대 참모들을 각각 만나 주요 국정과제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당부한 점도 정부의 정책 유지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이런 주요 결정을 모두 당정 협의를 통해 함께 내린 것이고, '정통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은 포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존에 결정된 정책을 백지화하는 것만큼은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황 권한대행의 인사권 행사 문제도 협의체 운영과 관련해 분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현재 장관이 공석이거나 교체 대상인 부처는 기획재정부, 국민안전처, 법무부 등 3개로, 황 권한대행은 이 가운데 임종룡 후보자가 40일째 인사청문 절차를 기다리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하루빨리 임명해야 한다는 의중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도 경제팀을 조속히 재정비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임 후보자를 밀어붙이는 데 대해서는 반대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 황 권한대행 측은 협의체에서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지만, 야권은 '진정한 협치'를 하려면 '만사(萬事)'인 인사 문제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제1야당인 민주당이 여당의 친박(친박근혜)계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여·야·정 협의체'가 아닌 '국회·정부협의체'라는 용어를 쓰는 점도 출범 후 운영 과정에서의 변수로 남았다.

다만 여·야·정 협의체가 가동될 경우 당면 과제인 경제위기 관리와 민생 대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원활한 조율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거시 지표 관리에 대해서는 여야 경제통들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있는데다 만약 민생경제 지표가 나빠지면 국정 주도권을 쥐게 된 야당에 책임이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강병철 임형섭 현혜란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