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정부를 민생, 경제, 정치, 외교, 안전을 포기한 ‘5포 정권’에 빗대는 등 거칠게 몰아붙였다. 원내 제1당 대표로서 당면 현안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 제시는커녕 기본소득 등 기존의 이념적 정책 구상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원전 산업을 복원하고 있는 현 정부를 향해 ‘에너지 정책 전면적 전환’을 요구하는 등 실패한 과거 정책으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시즌2’를 연상케 한다.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 주장부터 그렇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가 400조원 이상 늘어난 가장 큰 원인이 추경 남발 때문임을 감안하면 이 주장 자체가 염치없다. 나랏빚 이자만 해도 올해 25조원이 넘고, 경기 침체로 세수 펑크까지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게다가 사회간접자본(SOC) 구축 등 추경도 대부분 선심성 용도로 쓰자고 한다. 내년 총선 표를 겨냥한 것으로, 나랏돈을 매표용으로 쓰자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이 대표는 “국가가 져야 할 빚을 국민이 대신 지는 이 현실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고 했으나 늘어나는 나랏빚은 누가 감당하나. 이 대표는 국채 비율이 51%로 선진국에 비해 낮다며 늘리자고 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재정지출 증가 속도는 빨라지는 데 비해 경제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재정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현 정부를 향한 ‘에너지 정책 전환 요구’도 원전업계 고사 등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으로 인한 피해액이 2030년까지 47조4000억원(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보고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안무치하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처리수를 ‘핵오염수’라고 한 것은 과학과 거리가 먼 선동정치로, ‘윤석열 정부=친일’이라는 악의적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종부세 완화를 ‘초부자 감세’로 규정하고, 근로소득세 증가와 대비한 것은 빈부로 편을 갈라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하는 기본사회도 재차 주장했는데, 천문학적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건가. 이 대표는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며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고 했다. 이번만큼은 또 공수표를 날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