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의 시각] 최저임금 '시즌 2023' 개봉박두
10조2800억원.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5년 동안 뿌린 돈의 규모다. 정식 명칭은 ‘일자리안정자금’이다. 공약한 대로 최저임금은 많이 올렸는데, 사장들이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직원들을 내보낼 수 있으니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인건비를 대주겠다는 취지였다. 2018년 2조9737억원을 시작으로 2019년 2조9173억원, 2020년 2조6611억원, 2021년 1조2966억원, 올해도 4286억원이 책정됐다.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대상은 상시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로, 월평균 보수 230만원 미만 근로자 1인당 지원금이 책정된다. 지원금 규모는 2018년 1인당 13만원이었다가 점차 줄여 올해는 1인당 3만원을 지원한다.

현 정부 헛발질에 10조원 낭비

최저임금을 한껏 올려놓고 사업주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10조원 넘는 세금을 투입했지만 실제 얼마나 일자리를 안정시켰는지에 대한 정부 공식통계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일자리안정자금을 받은 사업주가 그 지원금을 어디에 쓰는지는 애당초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그래서 직원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아우성을 치는 소상공인들에게 정부는 그저 “돈으로 메워줄게”라는 식으로 일자리안정자금을 뿌렸을 뿐이다. 고용만 유지하면 지원금의 용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다 보니 경비·청소원 등의 고용 유지를 대가로 거액의 지원금을 챙긴 상당수의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지원금을 가구 수로 ‘n분의 1’씩 나눠 갖는 일도 빈번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자리안정자금은 올해 상반기를 끝으로 생명을 다할 예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자리안정자금이라는 희한한 정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저임금이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이듬해 최저임금을 무려 16.4%나 올렸다. 2018년에도 10.9%를 올렸다. 2년간 30%에 육박하는 인상률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이라며 2년간 6조원에 가까운 돈을 뿌렸지만, 현장의 일선 사업주들은 주휴수당을 못 주겠다며 상시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주 15시간 미만 메뚜기 알바 체제로 전환했다. 이른바 ‘알바 쪼개기’다.

노사 모두 인정하는 결과 기대

그러자 뒤늦게 상황을 인식한 정부는 2020년과 2021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각각 2.9%, 1.5%라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결과적으로 법정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사업주들은 알바 쪼개기를 통해 비용 증가를 최소화했고, 근로자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일했지만 소득은 크게 늘지 않았으며 정부는 10조원의 혈세를 날리고도 정책 효과는 가늠조차 못하고 있다. 그저 일자리 안정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추정만 있을 뿐이다.

이달 말 고용노동부 장관의 최저임금 심의 요청이 예정돼 있고 오는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 곧바로 최저임금 협상 시즌이 본격화된다. 역대 최고 인상률과 역대 최저 인상률을 반복했던 ‘헛발질’과 그로 인해 공무원들조차 “듣도 보도 못한 정책”이라고 폄하하는 일자리안정자금과 같은 ‘똥볼’은 현 정부로 족하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최저임금을 200만원으로 잡으면 150만원, 170만원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일을 못해야 하느냐”고도 했다. 당선인의 말처럼 인상률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산정 기준, 주휴수당, 업종별 구분 적용 등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뤄져 사업주도 근로자도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