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가 석 달도 남지 않은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장 간선제’를 추진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온 나라가 다음 대통령 선거에 매몰돼 있는 와중에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 중요한 제도 변경을 꾀하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간선제 도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며 벌써 지자체를 상대로 의견 수렴까지 벌여 ‘과속’ 비판이 일고 있다.

행안부가 지자체에 제시한 간선제는 지방의회가 지방의원을 제외한 지원자 중에서 지자체장을 뽑거나, 지방의원 가운데서 선출하는 방식이다. 지자체별로 현행 직선제를 유지하면서 인사·감사·조직·예산 권한을 지방의회로 분산하는 방안도 있다. 주민투표로 이런 방식 가운데서 선택하자는 것으로, 2026년부터라는 로드맵까지 마련해 놨다. 행안부는 “지난달부터 시행되는 개정 지방자치법에 지방의회와 집행부 구성을 주민투표로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치제의 중요한 ‘게임 룰’ 개정은 대선 와중에 곧 물러날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새 정부가 구성된 뒤 충분한 논의와 공론을 거쳐 법을 제정하는 게 옳다. 6월 지방선거에 미칠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 대선 3개월 뒤에 연장전처럼 이어질 지방선거가 어떤 혼탁 양상을 보일지 모르는 판에 정부가 기름이라도 끼얹겠다는 것인가. 진짜 다른 속셈이라도 있는 것인지, 뜬금없어 보일 뿐이다.

‘직선제냐 간선제냐’로 벌어질 소모적 논란이 불 보듯 뻔하다. 더구나 지방의회가 일 잘할 단체장을 차분하게 뽑을 만큼 자질과 전문성·자율성·책임성을 갖췄다고 보기도 어렵다. 당장 ‘대장동 게이트’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성남시의회가 뭘 했는지 보라. 이런 지방의회에 시장 선출권까지 주자는 것인가. 지방의원이 10명도 안 되는 지자체도 적지 않은 현실에서 ‘지역 토호’가 발호·전횡하는 장치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단체장을 이렇게 뽑으면 대표성은커녕, 견제와 균형의 자치 원리와도 맞지 않는다.

물러나는 정부가 엉뚱한 과욕을 부린다. 그러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은 끝까지 외면하고 있다. 좀비기업 구조조정, 공공요금 현실화, 연금 개혁 같은 과제가 다 그렇다. 지방의회를 위시한 일반 자치제도는 물론 무분별한 지방교육재정은 오히려 차기 정부가 원점에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툭하면 불거지는 ‘기초의회 무용론’이 왜 나오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