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연구개발(R&D)센터.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8단 제품 등 SK하이닉스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인공지능(AI) 메모리 반도체의 산실인 이곳에 곽노정 사장과 김주선 AI 인프라 담당 사장 등 고위 경영진 8명이 등장했다. 이날 경영진은 ‘AI 시대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내·외신 기자를 초청, ‘HBM3E 12단’ ‘300테라바이트(TB)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차세대 제품 개발·출시 계획을 공개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를 겨냥해 ‘AI 메모리 패권’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까지 HBM 물량이 완판” “투자에 대응할 정도의 현금은 충분하다”고 언급하며 사업 전망에 대한 우려도 일축했다.

○HBM4 양산 1년 앞당겨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2일 경기 이천 본사에서 ‘인공지능(AI) 시대 SK하이닉스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2일 경기 이천 본사에서 ‘인공지능(AI) 시대 SK하이닉스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국내에서 처음으로 SK하이닉스 경영진이 총출동해 개최한 기자간담회인 만큼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내·외신 기자 50명이 참석해 한 시간 넘게 질문을 쏟아냈다. 가장 큰 관심은 SK하이닉스의 HBM3E 12단 제품 출시 계획이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30일 12단 제품을 2분기에 양산할 예정이라고 공개한 영향이 컸다. SK하이닉스는 4세대 HBM인 HBM3를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며 HBM시장을 주도했지만 최근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는 “이달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하고 3분기 양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초 내년 초로 잡았던 HBM3E 양산 일정을 올해로 앞당긴 것이다. 고객사는 HBM시장의 큰손 엔비디아인 것으로 알려졌다. 6세대 HBM인 ‘HBM4’ 양산 시기도 1년 앞당겨 2025년으로 잡았다. 곽 사장은 “HBM 기술 경쟁력을 갑자기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량 SSD시장 주도할 것

‘HBM 공급 과잉’ 우려에 대해선 강한 어조로 일축했다. 곽 사장은 “기술적 우위와 AI용 반도체 수요가 맞물리면서 올해 HBM 생산 물량이 솔드아웃(완판)됐다”며 “HBM은 고객 수요를 기반으로 투자를 집행해 과잉 투자를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HBM시장을 개화 단계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전체 메모리시장의 약 5%(금액 기준)를 차지한 HBM과 고용량 D램 모듈 등 AI 메모리 비중은 2028년 61%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HBM시장은 중장기적으로 연평균 60%에 달하는 고성장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낸드플래시 시장도 살아나고 있다는 게 SK하이닉스 경영진의 평가다. AI 서버 등에서 저전력·고성능 저장장치 수요가 늘면서 고용량 SSD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낸드플래시·SSD를 담당하는 안현 부사장은 “고용량 SSD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어 솔리다임은 쿼드레벨셀(QLC) 기반 60TB SSD로 대응 중”이라며 “SK하이닉스도 올해 QLC 기반 60TB를 개발해 내년에는 300TB까지 초고용량 제품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시설 확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경기 용인 클러스터의 첫 번째 팹은 내년 3월 착공해 2027년 5월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재무 상황에 대해 김우현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는 “필수 투자는 영업현금흐름으로 대응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천=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