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현대사에 한 장(章)으로 남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이 큰 틀에서 무난히 끝났다. 영국 정부와 EU 행정부 모두 ‘합의’를 강조하는 가운데 ‘연착륙 브렉시트’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4년 반이나 걸린 이 협상이 향후 세계 정치·경제에 미칠 영향은 작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 ‘개방과 통합’을 추구해온 글로벌 경제가 ‘분리와 자국 중심’으로 뒷걸음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한국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지만, 미국·중국 간 ‘통상·경제전쟁’이 장기화하는 와중이어서 ‘개방 교역국’을 지향해온 우리 처지에서는 국경선을 높이는 어떤 형태의 보호주의 기류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금융·안보 등 남은 의제가 어떻게 정리되는지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 이후’ 국제 정치는 예측불허다. “재정과 국경, 법, 통상, 수역(水域) 등의 통제권을 회복했다”는 영국 정부의 성명은 사뭇 21세기의 신(新)보호주의가 보여줄 거친 국제관계를 암시하는 것 같다. 갈팡질팡하는 코로나 방역과 기껏 법무부 장관과 검찰 간의 비상식적 대립·갈등에 온 나라가 매몰된 사이, 국제사회는 퇴행일지도 모를 변혁기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연착륙 브렉시트’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더 중요한 점은 영국의 국가적 리더십이다. 2016년 국민투표 이전부터 영국을 양분시켜온 브렉시트라는 국가 대사를 무난히 매듭지은 보리스 존슨 총리와 의회 등 영국 정치의 저력이다.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 이후 47년간 하나였던 EU와의 합의 결별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찬반이 극명했다는 것은 영국 내부 갈등도 컸다는 사실에 다름 아니며, 정치·안보와 경제, 사회·문화 곳곳에서 이해가 극명히 엇갈리는 민감 사안이 계속 불거져 왔다.

하나같이 국론을 반으로 쪼갤 갈등 현안을 영국 정치는 어떻게든 봉합하고 극복해 왔다. 마지막까지 쟁점이던 어업권 문제, 영국에서 독립하겠다는 스코틀랜드의 반발, EU로의 여행과 거주 제한에 따른 새삼스런 내부 불만 등 적지 않은 후유증을 영국식 책임정치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제대로 된 민주정치라면 내부의 대립과 반목을 해소하면서 주어진 권한 내에서 책임도 분명하게 지는 리더십에 기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툭하면 편을 가르고, 작은 갈등을 진영논리로 더 증폭시키며,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갇혀 표 계산에 급급한 한국의 저급한 퇴행정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