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에 이어 어제 한글날에도 수도 서울 한복판 광화문 일대는 경찰차가 만들어낸 차벽으로 완전 봉쇄됐다. 일부 차벽이 철제 펜스로 대체되는 등 개천절 때보다 봉쇄가 완화됐다지만 ‘닫힌 광장’은 1주일 새 두 번이나 재연됐다. 휴일임에도 활기가 사라진 기괴한 광장, 그 너머에 구중궁궐처럼 자리한 청와대의 위압적인 모습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되묻게 했다.

앞서 개천절에도 차벽 설치와 집회 원천봉쇄는 ‘기본권의 과도한 침해’라는 비판이 좌우진영으로부터 쏟아졌다. 그런데도 경찰은 또 차벽을 쌓고 곳곳에서 검문하며 시민을 광장으로부터 격리하는 데 급급했다.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라도 결코 경시돼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의 헌법정신이다. ‘방역’이란 공익을 내세웠지만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원천봉쇄는 분명한 과잉이다.

차벽 설치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해 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2009년 판단이다. 광화문 인근 백화점과 놀이공원 등에 수만·수십만 명이 몰리고 ‘콩나물 지하철’로 매일 수백만 명이 이동하는 게 현실이다. 반정부 집회를 콕 집어 방역에 방해된다는 경찰 주장은 얼마나 공허하고 부끄러운가.

코로나 감염 위험성을 집회 참가자라고 모를 리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외쳐야 할 목소리가 있다면 기회를 주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더 큰 공익을 지키는 일이다. 방역을 빌미로 손해배상까지 위협하는 행태는 중국이 감염방지를 위해서 라며 아파트단지 가가호호 출입문을 봉쇄해 버린 조치와 얼마나 다른가. 북한이 우리 공무원을 무참히 살상하면서 내세운 명분도 ‘코로나 감염원 차단’이었다.

이른바 ‘재인산성’이라는 물리적 실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집권층 내부의 권위주의적 사고다. “일체의 관용도 기대하지 마라” “반드시 손해배상시키겠다”는 식의 살벌한 말이 매일같이 들린다. ‘감염병 검사 및 치료 거부행위를 테러행위에 포함시키겠다’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이런 식이니 신고 없이도 가능한 ‘1인 시위’나 기자회견 형태의 정치적 의사표현조차 감시당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민변, 참여연대 같은 친(親)정부 시민단체와 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까지 ‘집회의 자유’를 걱정하고 나설까. 공공의 이익보다 정권의 이익 지키기에 혈안인 공권력으로 회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