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다시 격화될 조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첨단기술 품목을 중국에 수출할 때 ‘군용(軍用) 허가’를 필수적으로 받도록 하는 내용의 새로운 수출 규제조치를 내놨다. 수출 전에 국가안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군용상품 리스트에 반도체 통신장비 등 첨단제품을 추가한 데다, ‘군용’의 정의를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대상 국가는 중국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이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보복조치라는 분석이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중국 책임론’을 계속 제기하는 가운데 나와 더 주목된다. 연초 1단계 합의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미·중 무역갈등이 재점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의 대규모 미국 제품 구매 등 합의 이행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군용상품 리스트에 있는 품목을 중국에 수출하는 경우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미국 기업만이 아니다. 외국회사가 만든 특정 미국산 상품을 중국으로 운송할 때도 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의 중국 수출도 예외일 수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번 조치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중국이 밖에서 민간용 첨단제품을 수입해 군사적 용도로 전용한 사례가 많았다는 게 미 정부의 인식이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 “중국 기업이 미국의 수출 통제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 기술이 넘어가지 않도록 계속 경계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출 통제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1단계 미·중 무역합의에 미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제3국 기업이 미국 밖에서 중국에 수출을 하더라도 미국 지식재산권이 포함된 경우 수출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보복 불똥이 국내 기업으로 튀지 않을지 불안하다. 이번 조치로 미국 기업들의 대중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게 뻔한데, 트럼프 행정부가 제3국 기업이 그 빈 공간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둘 것 같지도 않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를 해외로 확장한다면 반도체 등 한국 주력산업에는 또 하나의 충격파가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글로벌 공급망의 재조정과 함께 보호주의 득세, 통상분쟁 격화가 예상된다. 미국의 대중 수출규제는 그 전주곡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통상압력 고조 등 코로나 이후 새롭게 부상하는 리스크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미국과 지속적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기업으로서도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해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