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사태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시장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유가 하락세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수요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 감산 없이는 유가 하락 추세를 막을 방도가 없어 보이지만 산유국들 간 국제 석유전쟁은 오히려 가열되는 양상이다.

우려되는 것은 글로벌 불황의 장기화 가능성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기하강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미국 셰일오일 기업들부터 원유 생산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이들 업체의 파산이 금융으로 전이되면 실물경제가 다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과거 예를 보면 산유국들이 감산에 합의해도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석유전쟁에서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도 않다.

석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으로서는 이래저래 고민이다. 유가 하락세가 장기화하면 기존 에너지계획의 ‘가정’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탈(脫)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 끌어올리기가 핵심인 에너지전환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게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언제까지 보조금으로 재생에너지를 떠받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발(發) 불황으로 기업들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원전산업의 붕괴를 스스로 재촉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석유전쟁 와중에 지정학적 위험이 불거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지정학적 돌발 변수가 터지면 경기하강기에도 유가가 뛸 수 있다. 석유전쟁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에너지산업의 판도 변화도 마찬가지다.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어떤 상황에도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에 대응하려면 선택지가 많을수록 좋다.